
대한민국 최초의 초음속 전투기 KF-21 보라매가 세계의 주목을 받고 있지만, 정작 전투기의 심장인 엔진은 국산화율이 20%에 불과합니다. 34년간 군에서 포병장교로 복무하며 최전방 부대의 초급장교부터 참모와 지휘관을 역임하고, 정책부서에서 군의 주요 정책 및 전략 발전 업무를 담당했던 저로서는 이 수치가 남다르게 다가옵니다. 현장과 정책의 최일선에서 뼈저리게 실감했던 철칙은 단 하나, 무기의 겉모습이나 화려한 성능보다 이를 안정적으로 운용하고 지속적으로 유지할 수 있는 '자립 능력'이 군대의 생사를 가른다는 점이었습니다.
최근 국내 기술로 무인기용 국산 엔진이 첫발을 뗐다는 소식이 들려왔습니다. 이것이 왜 단순한 산업 뉴스를 넘어 우리 안보의 판도를 바꾸는 전환점인지, 군사학적 전술과 정책적 현실의 잣대로 냉정하게 짚어보겠습니다.
엔진 종속이 만들어내는 안보적·구조적 걸림돌
솔직히 저 역시 군 생활 초기에는 이를 막연하게만 알고 있었습니다. 무기를 구매하면 그 운용과 개조에 대한 온전한 권한도 함께 오는 것이라 단순하게 생각하곤 했습니다. 제가 군 생활을 시작했을 90년대 당시만 해도 우리 군은 많은 핵심 장비를 해외 기술과 부품에 의존하는 경우가 허다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정책부서에서 근무하며 방위산업과 전력 발전 정책을 직접 검토하면서 비로소 현실의 냉혹한 벽을 마주하게 되었습니다.
해외 기술이 들어간 무기체계는 수출, 정비, 개조 단계마다 원제작국의 승인을 낱낱이 받아야 하는 구조였습니다. 평시에는 잘 드러나지 않는 이 제약이 위기 상황이나 결정적인 수출 국면에서는 치명적인 약점으로 돌변합니다. 방산학에서는 이를 기술이전 제한(Technology Transfer Restriction)이라고 부릅니다. 무기 수출국이 핵심 기술의 이전 범위를 계약으로 묶어두어, 구매국이 독자적으로 정비하거나 개량하는 행위 자체를 통제하는 방식입니다.
실제로 국산 명품 무기로 꼽히는 K9 자주포의 수출 과정에서, 엔진 원제작국이 수출 승인을 거부해 계약 전체가 무산될 위기에 처했던 정책 사례를 검토한 적이 있습니다. 포병장교의 입장에서 K9 자주포는 우리 포병 전력의 패러다임을 바꾼 자부심 그 자체였습니다. 단순히 화력과 기동성이 좋아진 것을 넘어, 우리 손으로 직접 개발하고 언제든 개량할 수 있는 '자율성'이 확보되었기에 진정한 가치가 있었던 무기입니다. 그런 K9조차 엔진이라는 핵심 아킬레스건 때문에 해외 시장에서 발목을 잡힐 뻔한 모습을 보며, 엔진 국산화는 단순한 경제 논리가 아닌 국가 주권과 직결된 전략적 과제임을 뼈저리게 깨달았습니다.
현재 항공기용 고성능 터보팬 엔진(Turbofan Engine)을 독자 개발할 수 있는 국가는 미·영·러·프·중 등 지구상에 단 5개국에 불과합니다. 미사일기술통제체제(MTCR)나 바세나르 협약 등 겹겹의 국제 규범이 후발 주자의 진입을 철저히 막고 있어, 아무리 막대한 자본을 준비해도 살 수 없는 기술이 존재합니다. KF-21은 5세대 스텔스기인 F-35와 비교할 때 절반 수준의 가격으로 독보적인 가성비를 자랑하지만, 탑재된 심장은 미국 제너럴 일렉트릭(GE)의 F414 엔진입니다. 성능은 훌륭하나 이 엔진이 묶여 있는 한, KF-21을 제3국에 수출하거나 아군 마음대로 개조하려 할 때마다 미국의 승인 도장이 필수적입니다. 방산 수출에서 우리가 최종 결정을 내리지 못하는 이 구조적 종속이야말로 가장 근본적인 문제입니다.
무인기 엔진 개발, 기술 자립을 향한 첫 번째 징검다리
이러한 양방향 제약 구도에 최근 의미 있는 균열이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국내 기술로 5,500파운드급 터보팬 엔진과 1,400마력급 터보프롭 엔진 시제품 개발에 성공한 것입니다. 이 소식을 접했을 때 제 입에서 나온 첫마디는 "드디어 올 것이 왔다"였습니다. 규모가 작더라도 우리 손으로 설계하고 제작한 엔진이 실제로 돌아간다는 것 자체가 대단히 위대한 출발점이기 때문입니다.
이번에 성공한 엔진들은 향후 협동전투무인기(CCA, Collaborative Combat Aircraft)와 중고도 정찰 무인기에 탑재될 예정입니다. CCA란 유인 전투기와 편대를 이루어 함께 작전하는 무인 전투 항공기를 뜻합니다. 쉽게 말해 KF-21이 하늘의 지휘관이 되고, 무인기들이 윙맨(Wingman)으로서 위험한 전방 임무를 먼저 수행하는 미래형 작전 개념입니다. 이 분야는 앞으로 전 세계 전장에서 수요가 급격히 늘어날 핵심 시장입니다. 유인기 엔진보다 소형일지라도, 수천 대 단위로 양산된다면 그 시장 규모와 데이터 축적 가치는 유인기 엔진을 훨씬 웃돌 수 있습니다.
이번 도전의 주축인 한화에어로스페이스와 두산에너빌리티는 기존에 외산 엔진을 면허 생산(License Production)하며 제조 노하우를 쌓아온 기업들입니다. 면허 생산이란 원천 기술을 가진 국가로부터 허가를 받아 동일 제품을 자국에서 생산하는 방식입니다. 과거 학교기관에서 교관으로 근무하던 시절, 저는 후배 교육생 장교들에게 이 점을 늘 역설했습니다.
"면허 생산을 기술 종속의 고착화로만 봐서는 안 된다. 이것은 부품 정밀 가공과 품질 관리 역량을 합법적으로 흡수하여, 향후 독자 개발로 나아가기 위한 가장 확실한 징검다리다."
그 징검다리를 딛고 마침내 우리 방산이 도약한 것입니다. 이번 무인기 엔진 개발이 갖는 안보적·산업적 의미는 명확합니다.
- 독자 설계 역량 확보: 타국의 도면을 베껴 그리던 면허 생산을 넘어, 자체 설계와 조립, 제작 데이터를 우리 자산으로 처음 축적하게 되었습니다.
- 수출 자율성 확보의 첫걸음: 국산 엔진이 탑재된 무기체계는 수출 승인 과정에서 외국의 제약이나 눈치를 볼 필요가 없습니다. 계약의 선택지가 넓어집니다.
- CCA 시장 선점: 차세대 공중전의 판도가 짜이기도 전에 국산 무인기 엔진을 먼저 확보하는 전략적 선제 포지셔닝입니다.
- 2041년 유인기 엔진으로의 기술 연결: 소형 엔진에서 쌓은 원천 데이터와 가동 경험은 향후 24,000파운드급 대형 유인 전투기 엔진 개발의 단단한 주춧돌이 됩니다.
방산 기술에는 요행이나 단계를 건너뛰는 지름길이 없습니다. 무인기 소형 엔진에서 시작해 중형 엔진을 거쳐, 유인 전투기용 대형 엔진으로 이어지는 이 점진적 경로가 가장 확실하고 유일한 현실입니다. 우리는 이제 그 첫 번째 칸에 당당히 발을 디뎠습니다.
K-방산의 지속 가능한 미래, 완제품을 넘어 핵심 소부장으로
최근 K-방산이 전 세계에서 거두고 있는 성과들은 눈이 부실 정도입니다. 함대공 요격 체계 해궁이 말레이시아와 1,400억 원 규모의 첫 수출 계약을 맺었고, 천궁-II는 중동에서 실전 운용을 통해 96%라는 경이적인 요격 성공률을 증명하며 아랍에미리트(UAE)로부터 긴급 조기 공급 요청을 받았습니다. K2 전차 역시 페루 육군 도입 합의를 통해 2조 원이 넘는 역대 최대 규모로 중남미 시장에 첫 교두보를 마련했습니다. 방위사업청 자료에 따르면 우리나라 방산 수출 규모는 이미 세계 9위권으로 도약했습니다(출처: 방위사업청).
물론 유인 전투기용 24,000파운드급 대형 엔진 개발 목표 시점(2041년)을 두고 지나치게 낙관적이라는 우려가 있음을 저도 잘 알고 있습니다. 고출력 터보팬 엔진은 고온·고압의 극한 환경에서 수천 시간을 버텨내야 하므로 기술적 난도가 무인기 엔진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높습니다. 특히 1,000도 이상의 고온에서도 강도와 내식성을 유지해야 하는 터빈 블레이드용 내열합금(Superalloy) 소재 기술은 오랜 시간 축적된 기초과학이 없으면 진입조차 불가능합니다.
따라서 단기간에 가시적인 성과를 내라고 독촉하기보다는, 장기적인 관점에서 국가적인 투자가 지속되어야 합니다. 무기체계가 요구 성능을 실제로 충족하는지 철저히 검증하는 시험평가(Test and Evaluation) 단계를 절대 생략하거나 압축해서는 안 되며, 단계별로 역량을 차근차근 확보하는 정공법을 택해야 합니다.
유인 전투기용 24,000파운드급 엔진 개발 목표를 2041년으로 잡은 것을 두고 지나치게 낙관적이라는 시각도 있습니다. 저도 그 우려에 일부 공감합니다. 고출력 터보팬 엔진은 고온·고압 환경에서 수천 시간을 견뎌야 하는 내구성이 핵심입니다. 여기서 내열합금(Superalloy)이라는 소재가 관건이 됩니다. 내열합금이란 1,000도 이상의 고온에서도 강도와 내식성을 유지하는 특수 금속 소재로, 엔진 터빈 블레이드에 쓰이는 핵심 재료입니다. 이 소재 기술은 엔진 설계만큼이나 오랜 축적이 필요한 분야입니다. 목표 자체는 옳지만, 단계마다 충분한 시험평가(Test and Evaluation)를 거쳐야 한다는 전제가 반드시 붙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시험평가란 개발된 무기체계가 요구 성능을 실제로 충족하는지 검증하는 과정으로, 이를 생략하거나 압축하면 나중에 더 큰 비용을 치르게 됩니다.
이 기나긴 여정에서 국방과학연구소(ADD)를 중심으로 한 민·관·군 협력 체계는 가장 든든한 버팀목이 될 것입니다. 해궁, 천궁, 현무 시리즈 등 우리 군의 핵심 비대칭 전력을 주도해온 ADD의 원천 기술과, 민간 기업의 정밀 제조 역량이 결합될 때 비로소 실질적인 도약이 일어납니다(출처: 국방과학연구소(ADD)).
정책부서에서 근무하며 제가 배운 가장 값진 교훈도 바로 이것이었습니다. 무기체계 하나가 성공적으로 탄생하기 위해서는 대기업 한 곳의 스타플레이가 아니라, 수백 개의 중소 협력업체와 연구기관이 함께 맞물려 성장하는 견고한 '산업 생태계'가 구축되어야 한다는 사실입니다.
결론: 스스로 고치고 만드는 군대만이 살아남는다
34년 동안 군복을 입고 살면서 제 가슴속에 가장 깊이 박힌 교훈은 명확합니다.
"참된 강군(强軍)이란, 좋은 외산 무기를 많이 보유한 군데가 아니라 필요한 무기를 우리 손으로 직접 개발하고, 유지·보수하며, 시대의 변화에 맞춰 끊임없이 발전시킬 수 있는 군대다."
국방 기술 자립은 단순한 제조업 부흥 정책이 아닙니다. 국제 정세가 요동치고 공급망이 무기화되는 복합 위기 시대에, 국가의 생존을 담보하는 핵심 안보 전략입니다. 학교기관에서 후배들에게 강조했던 "우리 스스로 개량할 수 없다면 진정한 우리 무기가 아니다"라는 말처럼, 이번 무인기 엔진 개발의 성공은 자주국방의 진정한 독립을 향한 첫 신호탄입니다. 이 소중한 경험의 자양분을 바탕으로 2041년 차세대 전투기 엔진의 심장까지 우리 기술로 세차게 고동치게 만들 날을 기대하고 응원합니다.
⚠️ 본 칼럼에 인용된 KF-21 보라매의 엔진 국산화율, 국내 기업(한화에어로스페이스, 두산에너빌리티)의 무인기용 터보팬/터보프롭 엔진 시제품 개발 동향, 해궁·천궁-II·K2 전차의 최신 해외 수출 계약 및 방위사업청 통계 자료 등은 공신력 있는 국방 안보 언론 보도 및 정부 발표에 기초하였습니다. 본 글에 서술된 군사학적 제언, 기술이전 제한(Technology Transfer Restriction)의 영향력, 전력 발전 정책 평론은 34년간 포병 장교 및 국방 정책 부서에서 근무한 필자 개인의 전문적 식견과 경험을 바탕으로 작성되었습니다. 특정 군 기관이나 기업의 공식 입장을 대변하지 않으며, 모든 분석은 대한민국의 안보 자립과 국익을 최우선으로 삼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