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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F-21 보라매 (기술국산화, 체계통합, 자주국방)

by 등대가 있는 언덕 2026. 6. 29.

솔직히 저는 2015년 당시, 미국이 핵심 기술 이전을 거부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KF-21 사업이 원래 계획대로 진행되기 어려울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34년간 군에 몸담으면서 해외 무기 도입 사업이 높은 기술 장벽에 막혀 좌초되거나 수십 년씩 지연되는 경우를 현장에서 여러 번 목격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결과는 제 예상을 완전히 벗어났습니다. 우리 연구기관과 방산업체들은 외부에서 막힌 길을 안에서 스스로 뚫어냈고, 그 끝없는 집념이 지금의 KF-21 보라매를 탄생시켰습니다.

기술국산화: 위기가 아니라 전환점이었습니다

일반적으로 동맹국이 기술 이전을 거부하면 사업이 축소되거나 타협점을 찾는 방향으로 흘러간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저도 그렇게 예상했습니다. 그런데 KF-21의 경우는 달랐습니다. 2014년 F-35A 40대 도입 계약 당시 록히드마틴과 맺었던 21개 기술 이전 계약이 이듬해 미국 정부의 수출 승인 거부로 파기된 것이 발단이었는데, 우리 측은 그 빈자리를 그냥 두지 않았습니다.

가장 어려운 과제는 AESA(능동 위상 배열) 레이더의 자체 개발이었습니다. AESA 레이더란 수백 개에서 수천 개의 송수신 모듈을 독립적으로 제어해 표적을 정밀하게 탐지하고 추적하는 장비로, 4.5세대 이상 전투기에서는 사실상 필수 센서입니다. 쉽게 말해 조종사의 눈 역할을 하는 장비인데, 이걸 스스로 만든 나라가 전 세계에 많지 않습니다. 국방과학연구소와 한화시스템이 2016년부터 본격 개발에 착수해 결국 국산화에 성공했습니다(출처: 한화시스템).

AESA 레이더 외에도 IRST(적외선 탐색 및 추적 장비), EOTGP(전자광학 표적 추적 장비), 전자전 체계까지 미국이 이전을 거부했던 4개 핵심 센서 기술이 모두 국내 주도로 통합 완료되었습니다. IRST란 적외선 신호를 이용해 레이더를 켜지 않고도 표적을 탐지할 수 있는 장비로, 적에게 전파를 방출하지 않기 때문에 스텔스 작전에서 특히 중요합니다. 제가 군 생활 중에 전력 운용 회의에서 가장 자주 들었던 얘기 중 하나가 "센서가 없으면 무기도 없다"는 말이었는데, 그 센서들을 이제 우리가 직접 만들게 된 것입니다.

  • AESA 레이더: 약 1,000개 송수신 모듈 탑재, 최대 200km 표적 탐지, 동시 20개 표적 추적 능력 확보(공식 발표 기준)
  • IRST: 레이더 미사용 상태에서도 적외선 신호로 표적 탐지 가능, 피탐 위험 최소화
  • EOTGP 및 전자전 체계: 전자광학 표적 추적과 전자파 교란·방어 능력을 국내 기술로 통합
요약: 미국의 기술 이전 거부는 오히려 AESA 레이더를 포함한 4대 핵심 항공전자 기술의 자체 개발을 촉진했고, 그 결과가 KF-21의 실질적 토대가 되었습니다.

체계통합: 개별 기술보다 훨씬 어려운 과정

제가 직접 여러 무기 체계 도입과 운용을 경험하면서 느낀 것은, 개별 부품이나 센서를 확보하는 것과 그것들을 하나의 전투 체계로 통합하는 것은 완전히 다른 수준의 도전이라는 사실입니다. 전자가 기술 확보라면, 후자는 기술을 이해하고 다룰 수 있는 역량의 확보입니다. KF-21 개발에서 진짜 의미 있는 성과는 바로 이 체계 통합(System Integration) 능력을 갖췄다는 점이라고 생각합니다.

체계 통합이란 전투기를 구성하는 레이더, 항법 장치, 무장 관리 컴퓨터, 조종 인터페이스 등 수십 개의 하위 시스템이 하나의 플랫폼 안에서 유기적으로 작동하도록 설계하고 검증하는 과정입니다. 작은 오류 하나가 비행 안전성과 직결되기 때문에 시험 조건을 빠짐없이 검증해야 합니다. KF-21은 시제기 6대가 1,600회 이상의 비행 시험을 완료했으며 공중 급유를 포함한 13,000여 개의 테스트 조건을 통과해 최종 전투용 적합 판정을 받았습니다(출처: 방위사업청).

일반적으로 신규 전투기 개발 사업은 치명적인 지연이 반드시 따른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미국의 F-35 사업도 수년간 일정이 밀렸고, 유럽의 유로파이터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런데 제가 이 사업 일정을 들여다봤을 때 솔직히 놀랐습니다. KF-21은 주요 마일스톤을 비교적 예정대로 밟아왔고, 블록-I이 올해 하반기부터 대한민국 공군에 인도되어 2032년까지 120대 실전 배치가 계획된 상태입니다. 군에서 새로운 체계를 받아들이는 입장에서 보면, 이 정도의 일정 준수는 결코 당연한 것이 아닙니다.

물론 KF-21이 완전한 국산 전투기라고 단정 짓는 시각에는 저는 조금 선을 긋고 싶습니다. 엔진, 사출좌석 등 일부 핵심 구성품은 여전히 해외 부품에 의존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완전 국산'보다는 핵심 항공전자와 체계 통합 역량을 확보한 전투기로 이해하는 것이 더 정확합니다. 제 경험상, 무기 체계를 포장보다 크게 보면 실망하게 되고, 실제 가치를 정확히 보면 그게 더 대단하게 느껴지는 경우가 많습니다.

요약: KF-21의 핵심 성과는 개별 기술 확보가 아니라, 그것들을 하나의 전투 체계로 통합하고 검증하는 역량을 스스로 갖췄다는 데 있습니다.

자주국방: 도착점이 아니라 출발선

제가 군 생활을 시작했을 무렵, 우리 방위산업의 목표는 해외 기술을 배우고 라이선스 생산을 소화하는 것이었습니다. 기술을 가르쳐 달라고 요청하는 입장이었죠. 34년이 지난 지금, 우리는 전투기를 독자 설계하고 통합하며 해외 수출까지 추진하는 위치에 섰습니다. 이 변화가 얼마나 큰 것인지는, 그 중간 과정을 직접 목격한 사람만이 실감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자주국방이라는 표현은 오래전부터 있었지만, 저는 그것이 진짜 의미를 갖기 위해서는 구매 능력이 아니라 개발·개량 능력이 뒷받침되어야 한다고 봅니다. 핵심 기술과 부품을 외국에 의존하면, 수출국의 정책 변화나 국제 정세에 따라 부품 공급이나 성능 개량에 영향을 받을 수 있습니다. 전시를 먼저 생각하는 군의 입장에서 이것은 단순한 비용 문제가 아닙니다.

KF-21이 앞으로 풀어야 할 과제도 분명히 있습니다. 현재 블록-I은 공대공 능력 위주이며, 향후 블록-II·III에서 공대지 무장 확대, 국산 무장 통합, 소프트웨어 고도화가 단계적으로 진행됩니다. 그리고 장기적으로 엔진 국산화가 이뤄진다면 자립 수준은 지금과는 또 다른 단계로 올라설 것입니다. KF-21을 통해 축적한 AESA 레이더와 체계 통합 경험은 차세대 유·무인 복합체계 개발의 핵심 자산이 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제가 이 사업을 단순한 전투기 한 종의 개발로 보지 않는 이유가 바로 그것입니다.

요약: KF-21이 실현하는 자주국방의 진짜 의미는 무기를 산 것이 아니라, 만들고 고칠 수 있는 역량을 갖춘 것입니다.

KF-21 보라매를 두고 일부에서는 과도한 기대를, 또 일부에서는 지나친 폄하를 하는 경우를 봅니다. 제 경험상 둘 다 그리 생산적이지 않습니다. 중요한 건 이 사업이 우리 방위산업의 어디쯤에 위치하는지를 정확히 보는 것입니다. KF-21은 종착점이 아닙니다. 우리가 이제 스스로 전투기를 설계하고 통합하고 개량할 수 있는 나라가 되었다는 것, 그 출발선에 지금 서 있는 겁니다. 그리고 그 출발선의 무게는, 34년 전 처음 군복을 입었을 때와 지금을 비교해본 사람으로서 충분히 실감하고 있습니다.

참고: https://www.youtube.com/watch?v=GDDdDA5nrz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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