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임 장교 시절, 훈련 중 장비가 멈춰 서는 상황을 몇 번이나 겪었습니다. 문제는 성능이 아니었습니다. 외국산 부품 수급이 막히면 그냥 손을 놓는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때는 몰랐는데, 지금 돌아보면 그게 바로 한국 방산이 반드시 넘어야 했던 벽이었습니다. 그 벽을 어느 정도 넘었다는 걸 KF-21 보라매를 보면서 실감했습니다.
K-방산의 선두주자 KF-21 국산화의 진짜 의미
솔직히 처음에는 국산 장비에 대한 신뢰가 높지 않았습니다. 당시엔 국산화율이 올라가고 있다는 말을 들어도, 현장에서는 여전히 외국산 장비에 의존하는 부분이 많았거든요. 그런데 복무 중·후반으로 갈수록 상황이 달라졌습니다. 국산화된 장비는 부품 조달 속도가 빨랐고, 운용 교리도 우리 군의 실정에 맞게 다듬어져 있었습니다.
제가 직접 현장에서 체감한 국산화의 가치는 사실 '성능' 그 자체가 아니었습니다. 핵심은 지속 운용 능력, 즉 전장에서 장비가 멈추지 않고 얼마나 오래 작동할 수 있느냐였습니다. 아무리 스펙이 좋아도 부품 하나 없어서 전력이 마비되면 의미가 없습니다. 외국 장비를 쓸 때는 항상 그 불안감이 있었는데, 국산 장비가 늘어나면서 그 불안감이 줄어든 것이 저한테는 가장 큰 변화였습니다.
KF-21 보라매는 바로 그 지점에서 상징성이 큽니다. 최대 속도 마하 1.8, 항속거리 2,900km, 최대 7.7톤의 무장 탑재 능력을 갖춘 이 전투기는 2021년 첫 시제기 출고 이후 1,600회가 넘는 시험 비행을 사고 없이 통과했습니다. 여기서 항속거리란 연료를 재보급하지 않고 비행할 수 있는 최대 거리를 뜻하며, 2,900km면 한반도 방어는 물론 원거리 작전까지 충분히 소화할 수 있는 수준입니다. 2001년 김대중 전 대통령이 독자 전투기 개발 비전을 제시한 지 25년 만에 양산 2호기가 출고되면서, 한국은 세계에서 8번째로 초음속 전투기를 독자 생산한 국가가 되었습니다(출처: 방위사업청).
실전이 증명한 경쟁력
이론과 실전은 다릅니다. 제 경험상 이건 훈련장에서도 마찬가지였는데, 실전에서 검증되지 않은 장비는 아무리 스펙이 화려해도 신뢰가 가지 않습니다. 그런 면에서 천궁-II는 지금 K-방산이 가진 가장 강력한 세일즈 포인트라고 생각합니다.
천궁-II는 최근 이란의 공습이 이어지는 상황에서 실전 배치되어 96%의 요격 성공률을 기록했습니다. 여기서 요격 성공률이란 날아오는 적의 미사일이나 항공기를 실제로 격추시킨 비율을 뜻하며, 96%라는 수치는 세계 최고 수준으로 평가받는 미국 패트리엇(PAC-3)과 비교해도 밀리지 않습니다. 더구나 가격은 패트리엇의 5분의 1 수준입니다. UAE가 한국 정부에 미사일 조기 공급을 긴급 요청한 것도 이 실전 데이터가 뒷받침됐기 때문입니다. UAE 대통령 고문 교수가 SNS를 통해 "어려울 때 도와주는 한국이 진정한 친구"라고 밝힌 장면은, 단순한 외교적 수사가 아니라 실전 성능에 대한 신뢰 표현이라고 봐야 합니다.
천궁-II의 경쟁력을 한눈에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 실전 요격 성공률 96% (중동 공습 대응 기준)
- 미국 패트리엇 대비 약 1/5 수준의 도입 비용
- 패트리엇과 러시아 S-400보다 우수한 레이더 성능
- 현재 세계 10여 개국 도입 또는 도입 협의 중
도산 안창호함도 빼놓을 수 없습니다. 국내 기술로 건조된 3,000톤급 잠수함인 도산 안창호함이 최근 우리나라 잠수함 역사상 최초로 태평양 횡단에 나섰습니다. 경남 창원에서 출발해 태평양 4천여 km를 두 달에 걸쳐 가로지르는 이 항해는 캐나다 해군과의 연합 훈련 참가가 목적이지만, 진짜 노림수는 따로 있습니다. 최대 60조 원 규모의 캐나다 잠수함 수주 경쟁에서 독일과 맞붙는 것입니다. 1988년 독일에서 '장보고함'을 통째로 들여왔던 나라가 이제 독일과 캐나다 사업을 놓고 경쟁하는 수준까지 왔다는 사실이, 저한테는 어떤 수치보다 더 실감나게 다가옵니다(출처: 해군본부).
수출 확대와 기술 주권, 두 마리 토끼의 딜레마
UAE와의 방산 협력 사례를 보면서 저는 솔직히 복잡한 감정을 느꼈습니다. 86조 원 규모의 초대형 투자 유치, 방산 분야에서만 350억 달러 이상의 협력 사업 확정, 경남 지역에서 62조 원의 생산 유발과 14만 7천 명의 고용 창출 기대. 숫자만 보면 더할 나위 없이 좋은 결과입니다.
그런데 UAE 측의 오프셋(offset) 요구가 걸립니다. 오프셋이란 수입국이 무기 구매 조건으로 현지 생산이나 기술 이전을 요구하는 관행을 뜻합니다. UAE는 현지 생산 비중을 최대 60%까지 요구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는데, 이 비율이 높아질수록 지역 부품사의 실익은 줄어들고 핵심 기술이 외부로 흘러나갈 리스크는 커집니다.
방산은 단순한 수출 산업이 아닙니다. 핵심 기술이 한번 외부로 나가면 회수가 불가능하고, 이는 곧 미래의 경쟁자를 우리 손으로 키우는 일이 될 수 있습니다. 수출 확대와 기술 주권 유지, 이 두 가지는 방향이 같은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상충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K-방산의 지속 성장은 결국 이 긴장 관계를 얼마나 정교하게 관리하느냐에 달려 있다고 봅니다.
6.25 전쟁 당시 미국으로부터 F-51 전투기를 원조받던 나라가 이제 독자 개발한 초음속 전투기를 수출하는 나라가 됐습니다. 총 사업비 16조 5천억 원, 인력 6만 4,500명이 투입된 KF-21 보라매 하나에 이 모든 여정이 담겨 있습니다. 앞으로의 과제는 여기서 번 신뢰와 기술을 어떻게 지켜가느냐입니다. 수출 실적표만큼이나 기술 보호 전략을 꼼꼼히 챙겨야 할 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