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4년이라는 긴 군 생활 동안 저는 최전방과 격오지 야전에서 수도 없이 많은 종류의 군용 차량을 직접 탔고, 결정적인 순간에 고장 난 차량 때문에 작전 임무가 지연되거나 애를 태우는 안타까운 상황도 적지 않게 겪었습니다. 그래서 세계 최대 방산 전시회인 '유로사토리(Eurosatory)'에서 기아가 민수용 신형 픽업트럭 플랫폼 기반의 군용 전술 차량을 들고나왔다는 소식을 처음 접했을 때, 솔직히 군의 원로로서는 반신반의하는 마음이 먼저 들었습니다. "정통 군용 차량도 아닌 민수용 베이스가 과연 혹독한 전장을 버틸까?" 하는 의구심이었습니다. 그런데 공개된 세부 사양을 꼼꼼히 들여다볼수록 "이거, 실제 전장에서 흙먼지를 마시며 차량을 운용하는 현장 군인들의 입장을 제대로 반영했구나"라는 감탄이 절로 나왔습니다.
민수 플랫폼 기반 전술차: 수십 년간 야전을 지킨 지휘관이 깨달은 실전적 가치
일반적으로 군사 마니아들이나 방산 바이어들 사이에서는 군용 차량이란 오직 전투만을 위해 독립 설계된 전용 플랫폼이 곧 성능의 척도이자 정답이라고 알려져 있습니다. 그러나 수십 년간 부대를 지휘해 본 제 실전 경험상 이 부분은 완전히 다릅니다.
독립된 전용 차체로 만들어진 특수 군용 차량은 카탈로그 상의 성능 수치나 험지 돌파력은 대단히 인상적이지만, 정작 가혹한 야전 환경에서 예상치 못한 고장이 나면 특수 부품 하나를 보급부대에서 구하는 데 며칠, 심하면 몇 주씩 걸려 차량 전체가 무용지물이 되는 경우가 허다했습니다. 반면 민수용 대량 양산 플랫폼을 기반으로 제작된 전술 차량은 전 세계 어디서나 부품 수급이 기적처럼 빠르고, 군 정비 인력들도 별도의 복잡한 특수 교육 없이 민간 정비 노하우로 즉시 정비에 투입할 수 있습니다. 즉, 실질적인 '전투 지속 능력'과 야전 가동률 면에서 압도적으로 유리합니다.
기아가 유로사토리에서 전격 공개한 타스만(Tasman) 기반 전술 지휘차는 고효율 2.2L 터보 디젤 엔진을 탑재해 210마력의 탄탄한 기동성을 발휘하며, 적재 능력 1.1톤에 견인 능력은 무려 3.5톤에 달합니다. 여기에 군용 차량의 필수 조건인 등화 관제 장치와 도하를 위한 스노클, 험지 탈출용 윈치(Winch)가 기본 사양으로 견고하게 들어갑니다.
💡 등화 관제 장치 란?
야간 작전이나 은밀 기동 시 차량 내부 및 외부의 모든 불빛을 최소화하거나 완벽히 차단하여, 적의 육안 관측이나 야간 투시경, 드론의 열화상 카메라에 아군의 위치가 노출되지 않도록 제어하는 핵심 전술 장비입니다.
이러한 고도의 군사 전술 사양을 탄탄한 민수용 양산 플랫폼 위에 완벽하게 올렸다는 점이 이번 기아 전술차의 핵심 성공 방정식입니다.
현재 미군이 운용 중인 초호화 전용 경전술차 JLTV의 대당 가격은 약 6억 원 매매 수준에 육박합니다.
🇺🇸 JLTV (Joint Light Tactical Vehicle) 란?
미 육군과 해병대가 과거 노후화된 험비(HMMWV)를 대체하기 위해 막대한 예산을 들여 개발한 고기동 다목적 경전술차량입니다. 지뢰 방호력(MRAP급)과 탄도 방호력, 기동성을 동시에 극한으로 강화한 명품 차량입니다.
반면 기아의 국산 신형 전술차량은 현대차·기아의 글로벌 탑클래스 대량 양산 자동차 라인을 그대로 활용하기 때문에, 대당 1억 원대 중반 수준이라는 엄청난 가성비로 공급이 가능합니다. 다만 이 단편적인 가격 비교를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은 방산 전문가로서 조심스럽습니다. 미국의 JLTV와 한국의 민군 융합형 전술차량은 요구되는 방호 수준과 태생적인 설계 목적 자체가 완전히 다르기 때문입니다. 군용 차량의 진정한 가치는순수한 가격표보다, 부여된 임무 수행 능력과 장병의 생존성이 최우선이라는 점은 제가 현역 시절 내내 지휘봉을 잡고 느꼈던 타협할 수 없는 안보 원칙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군의 재정을 책임지는 안보 당국의 관점에서 총수명 주기 비용(LCC, Life Cycle Cost)을 대입하면 이야기가 완전히 달라집니다.
📊 총수명 주기 비용 (LCC) 이란?
무기체계를 단순히 최초로 구매하는 단가(획득 비용)뿐만 아니라, 도입 이후 수십 년 동안 부대에서 군수 운용하고 정비·유지보수(MRO)하며 최종적으로 폐기할 때까지 발생하는 전체 비용을 총합한 개념입니다.
실제 무기를 사서 굴려야 하는 운용국 입장에서는 이 LCC 숫자가 최초 구매 단가보다 전력 유지에 훨씬 더 치명적인 영향을 미칩니다. 한번 도입하면 20~30년을 악착같이 운용해야 하는 전술 장비라면 정비 부품 체계의 대량 양산 효율성이 곧 국가의 방산 경쟁력입니다. 바로 이 군수 지원 지점에서 기아의 민수 플랫폼 기반 전술차가 글로벌 시장에서 거부할 수 없는 강력한 고지를 선점하게 되는 것입니다.
실제로 기아의 KLTV(소형전술차량, 이른바 '레그완')가 까다롭기로 소문난 유럽의 방산 강국 폴란드군으로부터 대규모 계약을 따낸 것도 정확히 이 맥락입니다. 독일과 프랑스제 방산 차량이 오랫동안 독점하며 장악하고 있던 텃밭 같은 유럽 시장에서 대한민국 전술차가 대규모 계약을 성사한 것은 단순한 수출 실적 수치 이상의 대단한 의미를 가집니다.
다만, 계약 조건에 현지 합작 생산 및 기술 이전(ToT) 조항이 포함된 것은 우리 방산업계가 중장기적으로 영리하게 따져볼 필요가 있습니다. 단기적으로는 유럽 시장 패키지 진입에 화려하게 성공했지만, 결국 폴란드 현지의 차량 생산 및 정비 능력이 궤도에 올라오면 향후 유럽 시장에서 강력한 경쟁 구도로 바뀔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현재 폴란드의 급진적인 방산 현대화 방향을 완벽히 이해하려면 최근 NATO 회원국들을 관통하는 안보 흐름을 함께 통찰해야 합니다. NATO 본부는 회원국들에게 GDP 대비 최소 2% 이상의 국방비 지출을 강력히 권고하고 있으며, 러시아와 국경을 마주한 폴란드는 안보 위기감 속에 국방에 대대적인 투자를 감행하는 대표적인 안보 프런티어 국가입니다(출처: NATO 공식 사이트).
경량 자주포가 바꾸는 포병 운용의 패러다임: 거포주의를 깨부수다
솔직히 말씀드리면, 기아의 플랫폼 확장성을 활용한 이 화력 체계의 등장은 저에게도 완전히 예상 밖의 충격이었습니다. 과거 군에 있을 때 픽업트럭 기반의 경량화 자주포라는 개념을 처음 전해 들었을 때는 "상용 트럭 차체에 대포를 얹는다고? 그 가벼운 차체가 사격 시 발생하는 무시무시한 반동을 견디고 실전에서 제대로 된 정밀 화력이나 낼 수 있겠냐"는 전통 포병장교로서의 의구심과 편견이 먼저 들었던 게 사실입니다.
그러나 기아의 전술 플랫폼과 결합한 경량 자주포 체계의 전술적 운용 개념을 깊이 들여다보면, 이는 단순히 포의 크기를 줄인 소형화 무기가 아니라 현대 포병의 전술 운용 방식 자체를 통째로 바꾸는 가공할 혁신 체계라는 걸 깨닫게 됩니다.
이 경량화 자주포 시스템은 총중량을 7톤 수준으로 극적으로 떨어뜨려, 우리 군의 대형 수송 헬기인 CH-47 치누크(Chinook)에 매달아 공중 수송(Sling)이 가능하게 만들었습니다. 군사 작전에서 공중 수송이 가능하다는 말은 단순히 "이동이 조금 편리해졌다"는 수준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포병이라는 무거운 자산을 후방에서 전방을 지원하는 수동적 자산에서, 필요시 전선 한복판이나 적의 후방 종심, 험준한 산악 고지대에 신속하게 다이렉트로 투입하는 ‘전방 신속 투입 핵심 전술 자산’으로 군사적 위상 자체를 바꾸어 버린다는 뜻입니다.
제가 현역 시절 경험하고 지휘했던 기존의 대형 155mm 자주포들은 막강한 화력을 자랑하지만, 도로망이 파괴되거나 험준한 지형을 마주하면 전선 이동과 방열 전개 과정 자체에 상당한 시간과 엄청난 수의 지원 병력이 필수적으로 소모되었습니다. 기아와 현대위아가 손잡고 만든 경량 자주포는 바로 그 치명적인 기동의 공백을 완벽하게 메울 수 있는 비대칭 화력 체계의 등장인 것입니다.
더욱 놀라운 점은, 자동화 프로세스를 통해 단 두 명(2인)의 승무원만으로도 완벽한 사격 운용이 가능하다는 사실입니다. 현재 유럽 국가들이 직면한 청년 인구 감소와 병역 자원 부족 문제는 우리 군이 저출산으로 겪고 있는 고통보다 훨씬 더 심각한 수준입니다.
분당 최대 10발에 달하는 무시무시한 속사 능력을, 단 두 명의 인원이 안전한 차량 내부에서 자동화된 사격 통제 시스템 버튼 하나로 운용한다는 것은 병력이 기하급수적으로 줄어드는 극한의 인구 절벽 상황에서도 전선의 전체 화력 총량을 완벽하게 유지·강화할 수 있다는 생존의 의미와 같습니다.
🖥️ 사격 통제 시스템 (FCS) 이란?
지휘부로부터 디지털 전술 데이터 링크를 통해 표적 위치 정보를 실시간 수신한 순간부터, 포구의 고저각 및 선회각 자동 설정, 최적의 장약 선택, 그리고 격발에 이르기까지의 모든 복잡한 사격 계산 일련의 과정을 컴퓨터가 자동으로 처리하는 첨단 통합 지휘 체계입니다.
대한민국 방산이 이러한 경량 기동 화력 분야에서 전 세계적으로 가장 독보적이고 의미 있는 위치를 점하고 있다는 점은 정부 공식 통계 자료에서도 명확히 확인됩니다. 한국방위산업진흥회(방진회)의 공식 발표에 따르면 대한민국 방산 수출액은 글로벌 방산 수출국 최상위권에 당당히 진입하며 위세를 떨치고 있습니다(출처: 한국방위산업진흥회). 특히 이 경이로운 수출 수치의 상당 부분이 폴란드, 루마니아, 호주 등 영토가 넓고 인프라가 열악해 신속 기동 화력을 갈망하던 국가들로 향한 지상 무기체계와 전술 플랫폼이라는 점이 대단히 중요합니다.
유럽 내 경량 자주포와 전술 차량 시장의 공백을 대한민국이 가장 먼저 선점하여 채운다는 것은 단순히 물건을 많이 팔아 돈을 버는 제조업의 개념이 아닙니다. 군대가 어떤 화력 체계와 차량을 주력으로 쓰느냐에 따라 그 나라 군대의 전체 전술 교리, 장병 훈련 방식, 탄약 및 부품 공급망(Supply Chain) 체계까지 우리 시스템에 완전히 종속되기 때문에, 한번 채택된 안보 무기체계는 향후 수십 년간 쉽게 바꾸거나 대체하기가 현실적으로 불가능합니다. 대한민국이 이 거대한 틈새시장을 완벽히 선점한다면, 앞으로 글로벌 무대에서 단순한 무기 하청 공급자가 아니라 전 세계 군대의 전술 운용 개념을 직접 디자인하고 제안하는 ‘안보 방산 선도국’으로 확실하게 자리 잡을 수 있습니다.
[글로벌 전장이 기아 플랫폼 기반 경량 화력 체계에 열광하는 4가지 이유]
- 공중 기동성 ──► CH-47 헬기로 산악·도서 지역에 즉시 공중 투입 가능한 7톤 이하 중량
- 초경량 운용 ──► 자동화 사격 통제 시스템 도입으로 인구 절벽을 극복하는 '2인 운용' 구현
- 전술 공백 충족 ─► 대형 155mm 자주포가 절대 진입할 수 없는 험준한 오프로드 및 경보병 부대 완벽 지원
- 생존력 극대화 ─► 사격 후 적의 역포격이 날아오기 전 신속하게 진지를 변환하는 '슛 앤 스쿳' 최적화
기아의 군용차량 및 전장 모빌리티 사업의 폭발적인 확대는 단순히 "자동차가 튼튼해서 잘 팔렸다"는 수준의 가벼운 이야기가 결코 아닙니다. 대한민국이 세계 최고 수준으로 보유하고 있는 민간 자동차 산업 인프라와 첨단 IT 제조 기술력이, 오랜 기간 축적된 방산 화포 메커니즘과 결합했을 때 글로벌 안보 시장에서 얼마나 무서운 핵폭탄급 시너지 경쟁력을 발휘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가장 완벽한 실증 사례입니다.
앞으로 글로벌 방산 시장에서 한국 방산의 위상은 단순히 빠른 납기와 안정적인 공급망을 넘어, 우리 군이 직접 실전을 바탕으로 철저하게 검증해 낸 독창적인 운용 개념이 바이어 국가들에게 얼마나 설득력 있게 전달되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단지 무기의 스펙과 성능만으로 승부하던 낡은 시대는 끝났습니다. 압도적인 민군 융합 대량 생산 능력과 정비 유지보수(MRO) 체계, 그리고 시시각각 변하는 전장의 변화 대응 속도가 앞으로의 세계 방산 시장 다음 10년의 판도를 완전히 가를 것입니다.
본 평론은 전직 포병 지휘관으로서의 개인적인 시각과 분석을 바탕으로 작성되었으며, 특정 기관의 공식 입장과는 무관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