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평양 출신 탈북민이 직접 증언한 내용 중 가장 무게감 있게 다가온 부분은 코로나19 봉쇄 이후 김정은 정권의 통제력이 오히려 강화되었다는 사실이었습니다. 저는 34년간의 군 생활에서 상대방의 내부를 제대로 읽어야 안보 판단이 가능하다는 것을 몸으로 익혀왔는데, 이 증언은 그 관점에서 짚어볼 것들이 많았습니다.
1. 코로나 봉쇄: 위기가 아니라 강력한 '통제의 도구'였다
일반적으로 전염병과 국경 봉쇄는 정권을 흔드는 변수라고 알려져 있지만, 평양 출신 탈북민 양일철 씨의 증언은 정반대의 현실을 보여줍니다. 코로나19 이전 북한 사회는 조직 생활 이탈, 권력층의 불법 상행위, 극심한 빈부격차로 사실상 통제 불능에 가까운 상태였다고 합니다. 어느 날 누군가 굶어 죽었다는 소문이 돌아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였다는 표현이 인상적이었습니다.
그런데 봉쇄 국면에서 오히려 정권은 주민 이동, 물자 흐름, 외부 정보 유입을 한꺼번에 틀어쥐는 데 성공합니다. 사회통제(social control)란 국가나 집단이 구성원의 행동을 규범에 맞게 유지하려는 체계적 수단을 뜻합니다. 북한처럼 정보와 이동이 이미 제한된 사회에서는 봉쇄라는 비상 조치가 기존 통제 체계를 더욱 촘촘하게 만드는 촉매로 작용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제 경험상 이건 군사 조직 내부에서도 비슷한 원리가 작동합니다. 외부와의 접촉이 차단된 상황에서 구성원들은 내부 논리에 더 깊이 의존하게 됩니다. 국가 전체를 하나의 닫힌 조직처럼 운영하는 북한에서 봉쇄는 정권에 오히려 유리한 환경을 조성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다만 이것이 주민들의 삶이 나아졌다는 의미는 전혀 아닙니다. 정치적 통제의 강화와 경제적 생활의 안정은 전혀 다른 문제입니다.
통일연구원의 분석(출처: 통일연구원)에 따르면 북한의 코로나 봉쇄 기간 동안 시장 활동이 극도로 위축되었으며, 식량 및 생필품 가격이 수배 이상 급등한 것으로 추정됩니다. 정권의 통제력 강화와 주민 생활의 악화가 동시에 진행된 셈입니다.
2. 공식 제도 밖에서 작동하는 북한의 이중 경제 구조
저는 이 부분을 처음 접했을 때 솔직히 예상 밖이었습니다. 북한은 공식적으로 사유재산(私有財産)이 인정되지 않는 사회입니다. 사유재산이란 개인이 특정 재산에 대해 법적으로 보호받는 소유권을 갖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런데 현실에서는 고위 권력자가 자신의 직함과 이름을 내세워 아파트 한 동을 사실상 개인 자산으로 운영하는 일이 버젓이 존재했다고 합니다.
이것은 단순한 부패 사례가 아닙니다. 제도와 현실 사이의 괴리(乖離), 즉 공식 규범과 실제 작동 방식이 전혀 다른 이중 구조가 북한 경제 전반에 자리 잡고 있다는 증거입니다. 군 생활에서도 조직의 규정집과 실제 관행이 다를 때가 있었는데, 그럴 때일수록 겉에 보이는 제도보다 실제로 누가 자원을 쥐고 있는지 파악하는 것이 훨씬 중요했습니다. 북한의 안보 상황을 분석할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공식 정책만 읽어서는 실제 권력 구조를 제대로 파악할 수 없습니다.
코로나 이전 북한에서 나타난 기형적 빈부격차의 특징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 공식 소유권 없이 권력 직함을 활용해 건물 전체를 사실상 개인 자산으로 운영하는 구조가 존재했습니다.
- 보안서장 배우자가 타인 명의로 식당 등을 운영하는 방식의 우회 소유가 일상적이었습니다.
- 국가가 실질적 재원을 거의 갖지 못한 상태에서 권력자들이 민간 부를 흡수하는 방식으로 격차가 심화되었습니다.
- 코로나 봉쇄 이후에는 이러한 비공식 경제 활동 자체가 크게 위축되어 빈부격차의 양상도 변화했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이 구조는 북한 주민들이 정권을 바라보는 시선에도 영향을 줍니다. 평등을 내세우는 국가에서 권력자들만 부를 누리는 현실을 눈으로 보며 살아온 주민들이 체제에 어떤 감정을 가질지는 충분히 짐작할 수 있습니다. 다만 그 감정이 공개적 저항으로 이어지는 것은 전혀 다른 차원의 이야기입니다.
3. 선전의 내면화와 심리적 억제: 국경이 아니라 마음을 막다
한국 문화 콘텐츠가 북한 내부로 유입되면 주민들의 인식이 자연스럽게 바뀔 것이라는 시각이 있습니다. 제 경험상 이 논리는 절반만 맞습니다. 정보가 들어오는 것과 그 정보가 기존 세계관을 바꾸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양일철 씨의 증언에 따르면 북한 주민들은 한국 영화 속 화려한 생활상을 보고도 "저건 다 꾸며낸 것"이라며 냉소적으로 반응하는 경향이 강하다고 합니다. 이게 단순한 무지가 아닙니다. 주체사상(主體思想)이란 북한이 1970년대부터 국가 이념으로 내세운 사상으로, 자기 민족의 운명은 자기 스스로 개척한다는 자력갱생(自力更生) 원칙을 핵심으로 합니다. 자력갱생이란 외부의 도움 없이 자체 힘으로 살아간다는 의미입니다. 이 사상이 수십 년에 걸쳐 일상 언어와 교육, 문화적 감수성 전반에 스며들어 있는 상태에서 외부 정보는 기존 세계관의 필터를 통해 해석됩니다.
농사를 짓다가도 서로에게 "계급적 원수"라는 농담을 주고받을 정도로 적대감이 내면화되어 있다는 증언이 특히 인상적이었습니다. 이것은 선전의 내면화(內面化), 즉 외부에서 주입된 이념이 개인의 자발적 감각처럼 느껴지게 되는 현상입니다. 군사 세뇌 교육(軍事洗腦 敎育)이란 오랜 반복 교육을 통해 특정 적대 대상에 대한 인식을 자동화된 반응으로 굳히는 과정을 말합니다. 이런 상태에서는 한국의 경제적 발전이나 문화적 영향력이 곧바로 인식 변화로 이어진다고 기대하기 어렵습니다.
물론 변화 가능성을 완전히 닫아서는 안 됩니다. 사람의 생각은 오랜 시간에 걸쳐 조금씩 움직이기도 합니다. 다만 그 속도와 범위를 외부에서 정확히 측정하기 어렵다는 것, 그리고 외부 콘텐츠 유입만으로 체제 인식이 자동으로 전환된다는 낙관론은 현실과 거리가 있다는 점은 분명히 짚어둬야 합니다. 관련하여 국가인권위원회가 발표한 북한 인권 보고서(출처: 국가인권위원회)에도 북한 주민들의 정보 접근 실태와 외부 문화에 대한 반응이 다층적으로 서술되어 있습니다.
❓ 자주 묻는 질문 (FAQ)
Q1. 코로나19 국경 봉쇄가 북한 정권을 위협하기는커녕 오히려 통제력을 강화시킨 이유는 무엇인가요?
정보와 이동이 이미 통제되던 북한 사회에서 봉쇄라는 비상 조치는 주민들의 이동, 물자 흐름, 외부 정보 유입을 한꺼번에 틀어쥐는 완벽한 통제 수단으로 작용하여 주민들을 더욱 촘촘하게 감시할 수 있게 만들었기 때문입니다.
Q2. 북한 주민들이 한국 드라마 등 외부 콘텐츠를 접하고도 체제에 대해 곧바로 저항하지 않는 이유는 무엇인가요?
수십 년간 국가 교육과 주체사상을 통해 내면화된 '자력갱생' 및 적대적 세계관(선전의 내면화)이 필터로 작용하여, 화려한 외부 세계를 보고도 "저건 다 꾸며낸 것"이라며 냉소적으로 치부하거나 거부감을 느끼기 때문입니다.
Q3. 북한 당국이 물리적 국경 통제 외에 탈북을 막기 위해 가장 강력하게 활용하는 수단은 무엇인가요?
탈북 실패자 처벌 사례나 강제 북송 사건을 '생활총화' 등을 통해 반복 학습시킴으로써, 주민들 스스로 탈북을 상상조차 할 수 없도록 만드는 정교한 '심리적 억제제(심리적 봉쇄 전략)'를 활용합니다.
📝 글을 마치며
상대방의 내부를 제대로 읽어야만 올바른 안보 판단을 내릴 수 있다는 것은 34년 군 생활 동안 제가 뼈저리게 느낀 교훈입니다.
북한의 코로나 봉쇄와 통제 강화, 그리고 이중적 경제 구조와 정교한 심리적 억제 메커니즘은 우리가 북한을 단순한 경제난이나 외부 정보 유입의 단순 논리로만 바라봐서는 안 된다는 점을 경고합니다. 보이는 제도 뒤에 숨은 실질적 권력 구조를 읽어내는 냉철한 안목, 그것이 지금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안보적 통찰력입니다.
• 참고 문헌 및 출처: 안보 정세 분석(YouTube), 통일연구원 북한 동향 분석 보고서, 국가인권위원회 북한 인권 실태 보고서, 탈북민 심층 증언 자료
[면책조항 및 안내 (Disclaimer)]
본 포스팅은 공개된 탈북민 증언 및 국책 연구기관의 북한 인권·동향 보고서를 바탕으로 작성된 필자(34년 군 경력)의 주관적·전문적 안보 분석 글입니다. 특정 정부 기관의 공식 입장이 아니며, 정확한 북한 내부 실태 및 대북 정책은 정부 공식 발표를 참고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