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카테고리 없음

34년 군 경험으로 본 호르무즈 파병과 코리아패싱: 안보의 레드라인을 묻다 (교전규칙, 미중경쟁, 코리아패싱)

by 등대가 있는 언덕 2026. 9. 20.

 

뉴스에서 "호르무즈 해협 파병 검토"라는 제목을 보는 순간, 대부분은 '또 미국 눈치 보는 건가' 싶다가도 '그래도 우리 유조선이 지나는 길인데'라는 생각이 뒤따를 겁니다. 저도 34년 가까이 군에 있으면서 그 두 감정 사이에서 수없이 고민했습니다. 이 문제는 단순히 군함을 보내느냐 마느냐의 문제가 아닙니다. 한국의 에너지 안보와 동맹, 그리고 전쟁 개입 위험이 한꺼번에 얽힌 사안입니다.

호르무즈 파병과 왕건함: 교전규칙 없는 파병은 백지수표다

일반적으로 '비전투 임무'라고 하면 위험이 낮은 작전이라고 생각하는 분들이 많습니다. 그런데 제 경험상 이건 좀 다릅니다. 전투함이 분쟁 해역에 들어가는 순간, 임무의 명칭보다 현장의 상황이 먼저 움직이기 때문입니다.

 

교전규칙(ROE, Rules of Engagement)이란 아군 부대가 언제, 어떤 조건에서 무력을 사용할 수 있는지를 규정한 군사 지침입니다. 쉽게 말해 '어디까지는 쏠 수 있고, 어디서부터는 참아야 한다'는 경계선입니다. 작전계획을 수없이 검토해온 제 경험에서 가장 위험한 상황은 이 교전규칙이 애매할 때였습니다. 특히 해상작전은 육상보다 상황 전개가 훨씬 빠릅니다. 드론과 미사일이 동시에 날아오는 환경에서 지휘관에게 필요한 것은 외교적 문구가 아니라 명확한 판단 기준입니다.

 

청해부대가 현재 운용 중인 왕건함은 구축함급 전투함입니다. 이 함정의 작전 범위를 호르무즈 해협까지 확대하는 방안이 거론되고 있는데, 여기서 국회 비준 동의 문제만큼이나 중요한 것이 바로 작전개념(CONOPS, Concept of Operations)입니다. 작전개념이란 특정 임무를 어떤 방식으로, 어느 범위까지 수행할 것인지를 사전에 규정한 틀입니다. 이것이 불분명한 채로 함정이 현장에 나가면, 공격받은 선박을 눈앞에 두고 지원 여부를 두고 현장 지휘관이 혼자 판단해야 하는 상황이 생깁니다. 제가 직접 작전계획 과정에 참여하면서 느낀 것은, 처음에는 작은 임무로 시작했다가 상황이 바뀌면서 임무가 걷잡을 수 없이 확대되는 경우가 생각보다 흔하다는 점이었습니다.

 

파병을 결정하기 전에 반드시 정리해야 할 4가지 항목이 있습니다.

  1. 자위권 발동 기준: 어떤 상황에서 자위권 발동이 가능한가 — 우리 함정이 직접 공격받았을 때만인지, 호위 중인 선박이 공격받았을 때도 포함인지
  2. 외교적 비상 철수 계획: 이란과의 외교적 충돌 시 즉각 철수할 수 있는 계획이 사전에 마련되어 있는가
  3. 지휘체계 및 정보 공유: 미군 지휘체계와 정보 공유 범위는 어디까지인가 — 독자 작전인지, 연합작전 편입인지
  4. 법적 근거의 명확성: 국회 동의 없이 작전 범위를 확대할 수 있는 법적 근거가 명확한가

이 네 가지 중 하나라도 불분명하다면, 그 파병은 국민에게 위험 수준을 제대로 설명하지 않은 채 군인들만 현장에 내보내는 것입니다. 강한 국가는 많은 일을 하는 국가가 아니라, 무엇을 하지 말아야 하는지까지 명확하게 정한 국가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미중경쟁과 중동 방정식: 원유 수입선과 동맹의 딜레마

호르무즈 해협 문제를 단순히 '미국 요청에 응할 것인가'로 보는 시각도 있는데, 개인적으로는 그 틀이 이미 낡았다고 생각합니다. 지금 중동은 미국과 이란의 양자 대결이 아니라, 미국·이란·사우디아라비아·중국·러시아의 이해관계가 복잡하게 얽힌 다층 방정식으로 움직이고 있습니다.

 

미국이 중동에서 군사적 개입을 줄이는 흐름 속에서, 후티 반군(Houthi rebels — 예멘 내전에서 이란의 지원을 받는 무장 세력)은 이미 상당한 지역을 장악하고 사우디아라비아 핵심 인프라를 위협하고 있습니다. 사우디는 자국 방어를 위해 중국과의 군사 협력 및 파키스탄과의 상호방위조약에 의존하는 상황에 놓였습니다. 여기서 미국의 역할 공백을 채우며 중국의 지역 영향력이 눈에 띄게 커지고 있습니다.

 

전략적 레버리지(strategic leverage)란 협상에서 상대를 움직일 수 있는 압박 수단을 말합니다. 현재 중국은 중동 정세 안정화를 하나의 레버리지로 쥐고 미국과의 협상 테이블에 앉을 수 있는 위치에 있습니다. 트럼프 대통령 입장에서도 중동 수렁에서 빠져나오는 것이 국내 정치적으로 유리하기 때문에, 시진핑 주석과의 타협을 모색할 유인이 충분히 있습니다. 이런 흐름이라면 한국이 지금 미국의 요청에 응해 호르무즈에 함정을 보낸다고 해도, 정작 미중 간 빅딜이 이루어지는 과정에서 한국의 기여는 협상 카드로 소비될 수 있습니다.

 

호르무즈 해협은 한국 전체 원유 수입의 70% 이상이 통과하는 경로입니다(출처: 산업통상자원부). 이 해협이 막히면 그 충격은 곧바로 국내 에너지 수급과 물가로 연결됩니다. 그렇다고 우리 이익을 위해 군함을 보내는 것이 간단하지 않은 이유는, 우리가 그 해역에서 어느 진영의 작전에 얼마나 깊이 연루되느냐에 따라 이란과의 관계, 나아가 이란과 경제협력을 유지하는 국가들과의 관계까지 영향을 받기 때문입니다. 솔직히 이건 예상보다 훨씬 복잡한 외교 방정식입니다.

코리아패싱과 AI 자율무기: 레드라인과 통제체계

코리아패싱(Korea Passing)이란 한반도 문제의 핵심 당사자인 한국이 미북 협상 과정에서 배제되는 현상을 가리킵니다. 2017~2018년 협상 국면에서도 비슷한 우려가 제기된 적 있지만, 지금의 상황은 그때보다 구조적으로 더 취약합니다. 북한이 우리 정부와의 소통을 완전히 차단하고 있는 상황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독자적으로 김정은과 직접 대화에 나설 경우, 한국은 결과를 통보받는 위치로 밀릴 수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비핵화(denuclearization)' 표현이 공동 성명에 들어가면 긍정적 신호로 해석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런데 제가 군에서 외교 문서와 협정을 다루면서 배운 것은, 단어보다 그 단어가 어떤 맥락에서 쓰이느냐가 중요하다는 점입니다. 트럼프 대통령이 북한을 사실상 핵보유국으로 인식하는 발언을 이어가는 상황에서 공동 선언에 '비핵화'가 등장한다면, 그것은 목표 선언이 아니라 북한을 자극하지 않기 위한 외교적 완충 표현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한미 외교장관 회담에서 비핵화 표현이 다시 등장했다는 보도를 두고 일희일비할 필요는 없습니다. 더 중요한 것은 한국이 미국과의 협의에서 어떤 사안에 대해 반드시 참여해야 한다는 레드라인(red line — 절대로 양보할 수 없는 마지노선)을 명확하게 제시하고 있느냐입니다. 주한미군 지위, 연합방위체계, 대북제재 구조, 종전선언 조건 등은 한국이 협상 테이블에서 반드시 발언권을 가져야 하는 사안입니다. 이것을 미리 정리해두지 않으면 협상 과정에서 우리 이익은 후순위로 밀릴 수 있습니다.

 

AI 군사 기술 경쟁과 관련해서도 비슷한 논리가 적용됩니다. 자율무기체계(AWS, Autonomous Weapons Systems)란 인간의 개입 없이 스스로 표적을 식별하고 공격 여부를 결정하는 무기 체계를 말합니다. 민주주의 국가들이 인권 기준에 맞는 AI 규제에 매몰되는 사이 권위주의 국가들이 이 분야에서 앞서가는 딜레마는 실제로 존재합니다. 군에서 배운 가장 기본적인 원칙 하나는, 무기가 강력해질수록 통제체계는 더 정밀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AI도 그 원칙의 예외가 아닙니다. 기술 경쟁에서 뒤처지지 않으면서도 인간 지휘관의 최종 승인 체계를 유지하는 균형, 그것이 한국 국방이 앞으로 고민해야 할 지점입니다. 한국국방연구원(KIDA)에서도 자율무기 규범화에 관한 연구를 지속적으로 발간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출처: 한국국방연구원)

자주 묻는 질문 (FAQ)

Q1. 청해부대 왕건함의 호르무즈 해협 배치가 왜 법적·전술적으로 민감한가요?

 

A1. 소말리아 아덴만에서의 해적 퇴치 임무와 달리 호르무즈 해협은 국가 및 정규 무장 세력 간 전투가 벌어지는 분쟁 수역입니다. 전투함인 구축함이 진입할 경우 국회 비준 동의 요구는 물론, 명확한 교전규칙(ROE) 없이는 교전 발생 시 현장 지휘관의 판단 혼선 및 의도치 않은 전쟁 연루 리스크가 커지기 때문입니다.

 

Q2. 호르무즈 파병이 한국 에너지 안보에 미치는 실질적 영향은 무엇인가요?

 

A2. 한국 원유 수입량의 70% 이상이 호르무즈 해협을 통과합니다. 해협 봉쇄 시 국내 물가와 산업 전체가 타격을 입는 것은 사실이나, 군사적 개입 수위에 따라 이란 등 중동 국가들과의 외교 관계 및 장기적 원유 수급 안정성에 부작용을 초래할 수 있는 복합적 딜레마가 존재합니다.

 

Q3. '코리아패싱' 방지를 위해 한국 정부가 가져야 할 안보적 대응은 무엇인가요?

 

A3. 단순한 '비핵화' 단어 포함 여부에 일희일비하기보다 주한미군 지위, 연합방위체계, 대북제재 등 한국의 국익과 직결된 사안에 대해 명확한 '레드라인(마지노선)'을 설정하고, 미북 협상 테이블에서 한국의 발언권을 법적·외교적으로 확보하는 것이 시급합니다.

마치며: 날카로운 우선순위가 필요한 시점

34년 군 생활을 마치며 제가 얻은 결론은 단순합니다. 국가의 안보 판단력은 '얼마나 많은 곳에 개입하느냐'가 아니라 '무엇을 해야 하고 무엇을 하지 말아야 하는지를 얼마나 명확하게 구분하느냐'에서 드러납니다.

 

호르무즈 파병 문제도, 코리아패싱 대응도, AI 무기 규제 논쟁도 결국 같은 질문으로 귀결됩니다. 우리가 지키려는 국익이 무엇인지 먼저 정의하고, 그 목표에 맞는 수단을 고르는 것. 지금 한국 외교와 안보에 가장 필요한 것은 더 많은 선택지가 아니라, 더 날카로운 우선순위입니다.


[면책조항 및 참고자료 / Disclaimer & Sources]

본 포스팅은 작성자의 34년 군 복무 및 작전 분야 경험을 바탕으로, 공개된 정부 기관 자료(산업통상자원부 에너지 수급 통계, 한국국방연구원(KIDA) 자율무기체계 연구 등)를 참고하여 작성된 주관적인 안보·외교 분석 칼럼입니다. 특정 정파적 입장이나 정부 정책을 대변하지 않으며, 상황 변화에 따라 사실관계가 달라질 수 있습니다.


참고: 정부의 호르무즈해협 파병 및 안보 기조 관련 뉴스 보도


소개 및 문의 · 개인정보처리방침 · 면책조항

© 2026 언덕이 있는 언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