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뉴스를 보다가 문득 2019년이 떠올랐습니다. 그때도 호르무즈 해협 파병 논란이 뜨거웠고, 저는 당시 부대 지휘소에서 실시간으로 타전되는 중동 상황을 주시하며 "만약 우리가 저 좁은 해협에 투입된다면, 현장 장병들은 어떤 위험과 감시망을 감내해야 하는가?"라는 질문을 던졌습니다.
그 당시의 중압감과 질문이 지금 다시 돌아왔습니다. 미군이 이란 유조선 3척을 잇달아 격침시켰고, 이란은 이를 전쟁 참여로 간주하겠다고 강력히 경고했습니다. 현재 한국 정부는 군수지원함과 초계기 파견을 검토 중입니다. 단지 '파병을 하느냐 마느냐'라는 단순한 이분법보다 훨씬 복잡한 국익과 안전의 계산식이 우리 앞에 놓여 있습니다.
유조선 공격이 단순한 보복이 아닌 이유
미 중부사령부가 공개한 영상 속 유조선 '카일로'호는 타격 직후 순식간에 화염에 휩싸였습니다. 이어진 공격에서 '다우니'호는 이란 원유 수출의 핵심 거점인 하르그섬 앞바다에서 파괴됐습니다. 브레드 쿠퍼 미군 중부사령관은 "우리 함정 2척을 공격하면 당신들의 선박 3척을 제거할 것"이라고 공개적으로 밝혔습니다. 숫자로 정리하면 2대 3, 미국이 의도적으로 비율을 높인 겁니다.
군에서 작전을 계획할 때 저는 '전략적 종심(Strategic Depth)'이라는 개념을 자주 다뤘습니다. 전략적 종심이란 적이 핵심 자산에 도달하기 전에 시간과 공간을 얼마나 확보하고 있는가를 뜻합니다.
이번 유조선 공격은 그 연장선에 있습니다. 이란의 군사력 자체를 직접 타격하는 대신, 원유 수송망을 끊어 경제적 지속능력을 갉아먹는 전략입니다. 전투함이 아니라 유조선을 골랐다는 사실이 오히려 더 계산된 선택으로 보입니다.
[이란 원유 수출 망] ---> [미군의 유조선 타격] ---> [이란 국가 재정 및 전쟁 수행 능력 타격]
제가 군 복무 중 가장 뼈저리게 느낀 진리 중 하나는 "현대전에서 보급망과 물류는 곧 전투력 그 자체"라는 점이었습니다. 아무리 막강한 화력을 지닌 부대라도 연료, 탄약, 정비 부품의 공급망이 끊기면 시동조차 걸지 못하는 거대한 쇠붙이에 불과합니다. 이란 입장에서 유조선은 단순한 민간 선박이 아니라 국가의 재정과 군대를 움직이는 '핏줄'입니다. 미국은 그 핏줄을 직접 건드린 것입니다.
그러나 군사적 억제력(Deterrence)의 관점에서 볼 때 이는 커다란 위험을 안고 있습니다. 상대가 도발 비용이 너무 크다고 느끼게 만들어야 억제가 작동하는데, '2척 타격 시 3척 파괴'라는 단순 보복 수식만 고착화되면 이란 역시 그 공식에 맞춰 대응 수위를 높이게 됩니다. 억제가 아니라 '보복의 악순환'이 고착되는 것입니다. 현장 작전의 경험상, 명분과 체면이 걸린 강대강 대치 상황에서는 어느 쪽도 먼저 방아쇠에서 손을 떼려 하지 않습니다.
실제로 이란은 미군의 공격을 '전쟁 범죄'이자 '국가 주도의 테러리즘'으로 규정하며 강력한 대응을 예고했고, 호르무즈 해협에 진입하려던 미군 무인수상정을 공격했다고 주장했습니다. 해상 전역이 점점 넓어지고 있습니다. 이 흐름이 한국에게 낯설지 않은 이유는, 한국의 원유 수입 가운데 상당 부분이 바로 이 해협을 통과하기 때문입니다.
미국 에너지정보청(EIA)에 따르면 호르무즈 해협은 전 세계 해상 원유 교역량의 약 20%가 통과하는 핵심 길목이며, 한국 원유 수입량의 상당수도 이곳을 지납니다. 이 해협의 파고는 곧 한국 경제의 생존과 직결됩니다.
보복 확전이 한국에 의미하는 것: 현장에서 느끼는 위험도
뉴스를 보면서 솔직히 이건 예상 밖이었습니다. 미-이란 충돌이 군사시설 교환 타격 수준을 넘어 상선과 해상 물류 인프라로 번진 속도가 생각보다 빨랐습니다. 국제 유가는 불안정하게 흔들리고 있고, 호르무즈와 오만만 일대에서 충돌이 반복되면 원유 운반선의 보험료가 급등하고 해운 비용이 전방위로 오릅니다. 결국 이 비용은 한국 소비자에게 연료비와 물가 상승으로 전가됩니다.
군 복무 시절 작전 대비태세를 유지하며 배운 것은 '위기가 터진 후 대응하는 비용'은 '위기를 미연에 예방하는 비용'보다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크다는 사실입니다. 현재 호르무즈 파병 논의도 같은 맥락에서 바라봐야 합니다. 한국이 해상안보 협력에 전혀 관여하지 않을 경우, 나중에 상선이 실제로 위협받았을 때 우리 스스로 대응할 능력도 명분도 없어집니다.
더불어민주당 김병주 의원은 중동의 복잡한 정치 지형과 한미 동맹, 상선 안전을 모두 고려할 때 적극적인 파병 동의에는 신중해야 한다는 입장을 밝혔습니다. 이 부분은 저도 공감합니다. 다만 신중함이 곧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는 의미여서는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이란은 한국이 미국 측에 가담할 경우 직접적인 전쟁 참여로 간주하겠다고 경고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선택할 수 있는 지점은 어디인가를 좀 더 세밀하게 따져야 합니다.
파병을 검토할 때 정부가 반드시 명확히 설정해야 할 5가지 핵심 변수는 다음과 같습니다.
- 임무 범위: 전투 작전 참여인지, 해상 감시·정찰·군수지원인지에 따라 위험도가 완전히 달라집니다. 비전투 임무라 하더라도 분쟁 수역에 들어가는 순간, 현장 지휘관과 승조원들이 레이더 화면 하나하나에 세워야 하는 대비태세의 긴장감은 전투 임무 못지않습니다.
- 교전규칙(ROE): 아군이 언제, 어떤 조건에서 무력을 행사할 수 있는지 명확히 정해야 합니다. 교전규칙이 모호하면 현장 지휘관의 찰나의 판단 미스가 거대한 외교적 참사로 이어집니다.
- 지휘체계: 한국군이 미군의 직접 지휘 하에 들어가는지, 독자적인 임무 구역을 부여받아 독립 수행하는지는 법적·정치적으로 차원이 다른 문제입니다.
- 철수 조건: 언제, 어떤 상황에서 임무를 종료하고 복귀할 것인지 사전에 정해두지 않으면 과거 이라크 파병처럼 상황에 이끌려 장기화될 위험이 큽니다.
- 국회 동의: 헌법에 명시된 절차를 거쳐 정치적 정당성을 확보해야만 현장에 나간 장병들이 오롯이 임무에만 집중할 수 있습니다.
이 다섯 가지 중 하나라도 불명확한 상태에서 파병이 결정된다면, 그 결정은 동맹에 대한 기여가 아니라 위험 관리 실패로 기록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파병 조건: 친미/반미 프레임을 넘어선 국익과 장병의 안전
파병 문제를 '친미냐 반미냐'라는 낡은 정치적 프레임으로 접근하는 것은 가장 위험합니다. 군사적 결정은 명분이나 의리가 아닌 '국가의 실질적 손익과 위험 관리'에서 출발해야 합니다. 작전과 대비태세를 직접 경험하며 얻은 가장 단순하고 명확한 원칙은 "임무를 수용하기 전에 우리가 통제 가능한 위험인가를 먼저 계산하는 것"입니다.
현재 정부가 검토 중인 군수지원함(AOE) 및 해상초계기(P-3C/P-8A) 파견 카드는 전투 직접 참여와 완전한 불참 사이에서 현실적인 완충지대를 제공할 수 있습니다.
- 군수지원함: 직접적인 전투를 수행하지 않고 연료, 식량, 부품 등을 보급하여 이란에게 교전 당사국으로 지목될 명분을 줄여줍니다.
- 해상초계기: 넓은 해역의 정찰과 정보 수집을 담당하여 우리 상선의 안전한 항로를 확보하는 완충 역할을 합니다.
단, 이번 논의가 미·한 관세 협상이나 방위비 분담금 등 단기적인 경제·외교 협상의 '바꿔먹기식 카드'로 쓰이는 것은 철저히 경계해야 합니다. 군사적 위험 감수를 외교적 협상 카드로 던지는 순간, 현장 장병들의 목숨과 국가의 장기 전략이 위험한 협상 테이블 위에 올라가게 됩니다.
통일부를 포함한 정부 부처들이 한반도 안보 환경을 고려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호르무즈 파병 결정 역시 중동 상황만 보는 것이 아니라 북한과의 관계, 중국의 반응, 이란과의 외교 채널까지 포괄적으로 판단해야 합니다. 어느 하나의 변수만 보고 결정을 내리기에는 리스크가 너무 큽니다.
대한민국이 증명해야 할 전략적 성숙함
전투 참여와 방관 사이에는 생각보다 다양한 선택지가 존재합니다. 해상 감시, 선박 안전 지원, 구조·구난 및 정보 공유 등은 한국이 국제사회에 충분히 기여하면서도 직접적인 교전 리스크를 통제할 수 있는 영역입니다.
결국 이번 호르무즈 파병 논의가 우리에게 던지는 진짜 질문은 하나입니다.
"대한민국이 동맹의 요구와 자국의 국익, 그리고 현장 장병들의 안전을 동시에 관리할 수 있는 전략적 성숙함을 갖추었는가?"
정부는 단편적인 시각에서 벗어나 북한과의 안보 환경, 중동 외교 채널, 그리고 해상 물류의 안전까지 종합적으로 계산한 냉정한 답을 내놓아야 할 때입니다.
※ 본 포스팅은 공개된 국내외 군사·안보 뉴스 및 통계 자료를 바탕으로 작성자의 개인적 군 복무 및 작전 경험을 더해 작성된 주관적 비평 콘텐츠입니다. 본 글의 분석과 의견은 작성자 개인의 견해일 뿐, 정부나 국방부의 공식 입장과는 무관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