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라늄 농축 중단 기간을 놓고 미국은 20년, 이란은 5년을 주장하며 협상이 결렬됐습니다. 저는 이 숫자 차이를 보는 순간 "이건 당분간 안 끝나겠다"는 생각부터 들었습니다. 양측이 테이블에는 앉아 있지만, 군사 행동은 멈추지 않는 전형적인 회색지대(Grey Zone) 분쟁입니다.
협상결렬, 왜 이번엔 달랐나
파키스탄의 중재로 2주간의 휴전이 성사됐을 때, 솔직히 기대를 좀 했습니다. '한 장짜리 양해각서(MOU)'라도 만들어진다면 뭔가 실마리가 풀릴 수 있겠다 싶었거든요. 여기서 양해각서(MOU)란 정식 조약 이전에 당사자 간 협의 내용을 최소한으로 문서화한 합의 초안을 의미합니다. 구속력은 없지만, 협상의 출발점이 된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습니다.
하지만 트럼프 행정부가 핵심 조건들에 대해 완강한 입장을 밝히면서 협상은 다시 원점으로 돌아갔습니다. 가장 큰 걸림돌은 농축 중단 기간이었지만, 그게 전부가 아니었습니다. 이란이 지하 핵시설 운용 금지 조항을 협상안에 넣지 않겠다고 버텼고, 이란 혁명수비대가 군사 행동 재개를 강행하면서 협상 테이블 자체를 흔들었습니다. 제가 군 복무 시절 위기관리 회의에서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은 말이 있습니다. "상대는 협상 테이블에 앉아 있으면서도 군사 행동은 계속할 수 있다." 이번 사태가 딱 그 모습입니다. 외교 발표만 보면 협상 중이지만, 실제 병력 이동을 보면 전혀 다른 그림이 그려집니다.
이번 협상 결렬의 핵심 쟁점 5가지를 표로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 미·이란 핵 협상 주요 쟁점 및 입장 차이
| 주요 쟁점 | 미국의 요구 (강경) | 이란의 주장 (완화) | 비고 |
| 농축 중단 기간 | 20년 이상 장기 동결 | 5년 이내 단기 설정 | 최대 난제 |
| 농축 우라늄 상한 | 3.67% 엄격 제한 | 상한선 상향 희망 | 핵 무력화 관건 |
| 지하 핵시설 | 운용 완전 금지/폐쇄 | 주권 침해로 거부 | 보복 공격 대비 |
| 동결 자산 해제 | 200억 달러 제시 | 270억 달러 요구 | 경제적 압박 |
| 미군 기지 철수 | 수용 불가 (현상 유지) | 중동 내 미군 철수 | 안보 지형 변화 |
저강도장기전, 이게 더 무서운 이유

이란이 미 해군 구축함을 향해 크루즈 미사일과 소형 보트 기반 드론 공격을 감행하자, 미 중부 사령부(USCENTCOM)는 호르무즈 해협 인근의 이란 미사일 발사 기지, 지휘통제센터, 카심 섬 밤만 항구 등을 정밀 타격했습니다. 여기서 USCENTCOM이란 미군의 중부사령부로, 중동과 중앙아시아 지역의 군사작전을 총괄하는 통합전투사령부입니다.
이란 국영 TV는 반다르 아바스 항구의 폭발과 카심 섬 부두 일부 피해를 인정하면서도 민간인 사상자는 없다고 발표했습니다. 혁명수비대는 미군 함정에 '실질적이고 심각한 피해'를 입혔다고 주장했지만, 미 중부 사령부는 어떠한 피해도 없었으며 모든 공격을 차단했다고 반박했습니다. 현재로선 미국 측 발표가 더 신빙성 있다는 평가가 지배적입니다.
이 패턴이 반복된다는 것, 그게 문제입니다. 양측 모두 전면전은 원하지 않지만, 양보도 하지 않겠다는 구조 속에서 제한적 타격과 보복이 이어지는 저강도 분쟁(Low-Intensity Conflict)이 굳어지고 있습니다. 저강도 분쟁이란 전면전에는 이르지 않지만 산발적인 무력 충돌과 압박이 장기적으로 지속되는 형태의 군사적 대치 상황을 말합니다. 겉으로는 전쟁이 아닌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끝이 없습니다.
저는 이 상황이 5월 한 달간은 팽팽한 대치로 이어질 것이라고 봅니다. 다만 시간이 흐를수록 경제적 압박이 커지는 이란에게 점점 불리한 조건이 강요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호르무즈, 유조선 한 척이 국가 안보다
현역 시절 해상교통로(SLOC) 방호 개념을 처음 배울 때, 이런 말을 들었습니다. "호르무즈 해협은 전 세계 원유 물동량의 약 20%가 지나가는 에너지 동맥이다." 여기서 해상교통로(SLOC, Sea Lines of Communication)란 원유, 가스, 물자가 오가는 주요 해상 이동 경로를 의미하며, 이 경로가 차단되면 특정 국가의 에너지 공급과 경제 전체에 직접적인 타격이 옵니다.

당시엔 개념으로 배웠지만, 지금 뉴스를 보면서 그게 얼마나 현실적인 이야기였는지 새삼 실감합니다.
최근 이란 하르그섬에서 원유 유출 사건이 발생했습니다. 유출 면적은 약 50제곱킬로미터, 규모는 약 3천 배럴로 추정되는데, 이란 정부는 아무런 입장을 내지 않고 있습니다. 호르무즈 해협 봉쇄로 원유 수출이 막히면서 저장 시설이 포화 상태에 이른 것이 원인으로 지목됩니다. 이란은 지금 노후 유조선까지 저장 시설로 활용하고 있는 상황이고, 이마저도 한계에 다다르면 일부 유전 폐쇄나 원유 투기까지 강요받을 수 있습니다.
전 세계 원유 수급 현황은 국제에너지기구(IEA)에서 정기적으로 공개하고 있는데, 호르무즈 해협 병목 현상이 장기화될 경우 아시아 주요 원유 수입국들의 공급 차질이 심각해질 수 있다고 경고하고 있습니다(출처: 국제에너지기구(IEA)). 한국은 원유 수입의 70% 이상을 중동에 의존합니다(출처: 한국에너지공단). 유조선 한 척의 이동은 단순한 물류가 아니라, 우리 국민의 일상을 지탱하는 국가 에너지 안보 그 자체입니다. 제가 직접 연합 해군 작전 개념을 접하면서 배운 것이 바로 이겁니다. 유조선 한 척의 이동이 단순한 민간 물류 문제가 아니라, 국가 에너지 안보와 직결된 사안이라는 것.
미국의 딜레마, 한국의 선택
미국은 지금 딜레마에 빠져 있습니다. 이란과의 협상을 질질 끌며 더 유리한 조건을 뽑아내고 싶지만, 미중 정상회담이라는 시간 압박이 있기 때문입니다. 합의 없이 정상회담에 임하면 중국이 중재를 명목으로 대가를 요구할 수 있고, 그렇게 되면 중국에 레버리지를 쥐어주는 꼴이 됩니다. 이 구조를 이란도 읽고 있습니다. 그래서 지금 이란은 '버티면 유리하다'는 판단 아래 요구 조건을 최대한 관철시키려 하고 있습니다.
저는 이번 사태의 핵심이 결국 양측 모두 국내 강경 여론과 정치적 체면 때문에 먼저 물러서기 어려운 구조적 충돌이라고 봅니다. 이란 혁명수비대는 협상파가 양보하려 할 때마다 군사 행동으로 판을 흔들고, 미국 내 강경파는 트럼프 대통령에게 더 강한 조건을 요구합니다. 이 사이클이 깨지지 않으면 부분적 합의가 이루어지더라도 전체 협상은 계속 표류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한국 입장에서는 감정적 접근이 아니라 냉정한 국익 중심 대응이 필요합니다. 미국과의 공조를 유지하되, 에너지 수입 다변화와 해상교통로 보호를 위한 실질적인 외교·군사적 준비가 병행되어야 합니다. 중동 사태를 멀리서 관망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라는 것을 이번 사태가 다시 한 번 증명하고 있습니다.
결국 이 갈등이 언제 끝날지는 아무도 장담할 수 없습니다. 다만 한 가지는 분명합니다. 지금처럼 '휴전 아닌 휴전'이 이어지는 상황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상황이 바뀔 때마다 흔들리지 않고 국익을 중심으로 판단하는 원칙입니다. 이번 사태를 계기로 중동 에너지 의존도와 해상교통로 안전 문제를 다시 점검해보시길 권합니다.
이 글은 개인적인 경험과 의견을 공유한 것이며, 전문적인 외교·안보 자문이 아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