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바다에서 벌어지는 일이 우리 밥상까지 바꿀 수 있다고 하면 믿으시겠습니까. 저는 군에서 오래 작전과 안보 문제를 다루면서 그게 단순한 비유가 아니라는 걸 직접 겪었습니다. 지금 홍해와 바브엘만데브 해협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들이 딱 그런 상황입니다. 민간 상선이 잇따라 피격되고, 구조 인력까지 위험에 노출되면서 전선이 어디인지조차 모호해지고 있습니다.
해상교통로, 왜 이 바다가 위험해졌나
솔직히 처음 이 뉴스를 접했을 때 가장 먼저 든 생각은 "또 후티인가"가 아니라 "이번엔 일반 상선이구나"였습니다.
바브엘만데브 해협(Bab-el-Mandeb Strait)은 아라비아반도와 아프리카 사이의 좁은 해협으로, 아시아에서 수에즈 운하를 거쳐 유럽으로 이어지는 핵심 해상교통로(SLOC, Sea Lines of Communication)입니다. 해상교통로란 국제 무역선이 반드시 통과해야 하는 바닷길로, 이곳이 막히면 수출입 물류 전체가 흔들립니다.
이번에 피격된 티아마호 사건은 그 심각성이 남다릅니다. 1차 공격 이후 구조 인력이 접근하는 시점에 2차 공격이 감행되었습니다. 제가 군에서 배운 작전 개념으로 볼 때, 이는 단순한 위협을 넘어 인도주의적 구조 대응 자체를 봉쇄하려는 치밀한 의도로 읽힙니다. 구조 활동이 위험해지면 피해가 기하급수적으로 커지고, 주변 선박들은 사고 현장에 접근조차 포기하게 됩니다.
공격 대상이 사우디 연관 선박에서 일반 상선으로 확대되고 있다는 점도 간과할 수 없습니다. 선사(船社) 입장에서는 안전 항해의 기준 자체가 흔들리게 됩니다. UN은 이번 군사 활동이 2022년 휴전 이후 가장 큰 규모로 격화되었다고 경고했습니다. 작은 도발이 반복되면서 긴장이 서서히 높아지는 전형적인 패턴, 제가 군 생활 내내 가장 두려워했던 바로 그 패턴입니다.
홍해와 호르무즈, 복합전(Hybrid Warfare)의 시대가 시작됐다
이란이 오만과 호르무즈 해협(Strait of Hormuz) 내 안전 항로 협상을 진행하면서 선박 통제권과 감시권을 요구하고 있다는 보도가 나왔습니다. 호르무즈 해협은 전 세계 원유 해상 수송량의 약 20%가 통과하는 절대적인 길목입니다. 미국은 통행료 부과나 이란의 승인 요구를 받아들일 수 없다는 입장을 고수하여 양측의 설명이 완전히 엇갈리고 있습니다.
제 경험상 이런 상황이 위험한 이유는 물리적 봉쇄가 실제로 일어나지 않더라도 충분히 경제적 타격을 준다는 점입니다. 선박 운항사가 불안을 느끼는 순간 해상보험료가 급등하고, 항로를 우회하면서 운송비와 납기가 동시에 늘어납니다.
지금 홍해와 호르무즈에서 동시에 벌어지고 있는 상황은 단순한 미사일과 드론의 충돌이 아닌 복합전(Hybrid Warfare)의 전형적인 형태입니다. 복합전이란 군사적 수단과 경제전·정보전·사이버전·외교전을 동시에 결합해 상대를 압박하는 전략입니다.
아래 네 가지 축이 지금 이 해역에서 동시에 작동하고 있습니다.
- 군사적 압박: 상선 피격과 드론·미사일 공격을 통한 심리적 공포 유발
- 경제전: 해상보험료 상승 및 항로 우회(아프리카 희망봉 우회)에 따른 물류비 폭등
- 정보전: 공격 주체를 모호하게 만들어 국제사회의 신속한 대응을 교란
- 외교전: 항로 통제권 협상을 통한 중동 내 영향력 제도화 시도
이 네 가지 축이 맞물리면 어느 한 가지만 막아서는 해결되지 않습니다. 군사적 억제력(Deterrence)을 높이면서도 외교적 출구를 동시에 열어두어야 합니다. 억제력이란 상대방이 공격을 감행했을 때 치러야 할 대가가 너무 크다는 점을 인식시켜 공격 자체를 포기하게 만드는 전략 개념입니다.
제가 군에서 배운 가장 중요한 교훈이 바로 이것입니다.
"강한 군사력은 전쟁을 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전쟁을 막기 위해 필요하다."
우리 경제와 안보전망, 남의 일이 아닌 이유
홍해 위기가 대한민국과 무슨 관계냐고 물으신다면 저는 이렇게 답합니다. 우리나라는 에너지 해외 의존도가 90%를 훌쩍 넘고, 원유와 LNG(액화천연가스)의 수입 경로 상당수가 이 두 해협을 경유합니다.
국제에너지기구(IEA)에 따르면중동발 원유가 세계 공급량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여전히 30% 이상이며(출처: IEA), 호르무즈 해협을 통과하는 에너지 물동량은 전 세계 해상 원유 교역량의 5분의 1에 달합니다. 홍해와 호르무즈가 동시에 불안정해지면 우리가 체감하는 충격은 단순한 유가 상승이 아니라 제조업 원가, 물가, 운송비가 연쇄적으로 오르는 복합 충격으로 이어집니다.
또한 유엔무역개발회의(UNCTAD)의 분석에 따르면 홍해 항로 우회가 지속될 경우 아시아~유럽 간 컨테이너 운임이 단기적으로 최대 3배까지 상승할 수 있다는 전망도 있었습니다(출처: UNCTAD).
전쟁이나 위기는 반드시 대규모 교전으로 시작되는 것이 아닙니다. 작은 도발과 불확실성이 쌓이면서 시장이 먼저 반응하고, 그 비용은 고스란히 소비자에게 전가됩니다.
앞으로 국제사회가 나아가야 할 현실적인 전략은 다음과 같습니다.
- 공동호송(Convoy) 체계 강화: 군함이 상선 여러 척을 동행하며 보호하는 방식으로, 다국적 해상감시 네트워크를 촘촘히 구축해야 합니다.
- 외교적 출구 보장: 상대에게 공격의 대가를 분명히 보여주되, 명분 있게 물러설 수 있는 외교적 채널을 유지해야 합니다.
마치며..
결국 이번 홍해 사태는 단지 중동 내부의 분쟁이나 미·이란 간의 신경전이 아닙니다. 세계 경제의 혈관 역할을 해온 해상교통로가 정치적·군사적 협상 수단으로 전락하고 있다는 위험한 신호입니다.
대한민국처럼 에너지와 무역 의존도가 높은 나라일수록 해상 안보 이슈를 예민하게 들여다봐야 합니다. 바닷길이 불안해지면 가장 먼저 흔들리는 것은 결국 우리 일상과 경제의 기초이기 때문입니다.
FAQ: 해상 안보 및 물류 위기 관련 자주 묻는 질문
Q1. 해상교통로(SLOC)가 봉쇄되면 한국 경제에 즉각 어떤 영향을 미치나요?
A. 원유 및 LNG 수입 차질로 인한 유가 상승, 아프리카 희망봉 우회에 따른 운송 기간 증가(약 10~14일) 및 컨테이너 운임 상승으로 국내 제조원가와 수입 물가가 직격탄을 맞게 됩니다.
Q2. 복합전(Hybrid Warfare)이란 기존 전쟁과 무엇이 다른가요?
A. 선전포고를 통한 정규군 간의 교전뿐만 아니라 무장 단체를 통한 대리전, 드론·미사일 공격, 해상보험 및 물류 교란, 외교적 통제권 주장 등 비군사적·군사적 수단을 결합하여 상대를 압박하는 현대적 전쟁 형태입니다.
Q3. 공동호송(Convoy) 작전이란 무엇인가요?
A. 위험 해역을 통과하는 민간 상선들을 그룹화하고, 해군 군함이 밀착 호위하여 드론이나 미사일, 해적의 공격으로부터 보호하는 해상 작전 개념입니다.
⚠️ 안내 및 면책조항 (Disclaimer)
본 글은 언론 보도 및 공개된 국제 안보 자료를 바탕으로 작성되었습니다. 본문에 게재된 군사학적 분석과 해상 안보 관련 견해는 34년간 포병 및 작전 분야에서 복무했던 필자의 개인적인 안보관에 기초하며, 특정 국가 정부, 국방부, 또는 수사기관의 공식 입장이 아님을 알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