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전이 선언되면 위협도 함께 사라진다고 생각하시나요? 저는 군 복무 시절 해상 교통로 보호 작전과 위기 대응 훈련을 직접 수행하면서, 그 믿음이 얼마나 위험한 착각인지 뼛속 깊이 깨달았습니다. 미국과 이란이 전격 휴전에 합의했다는 소식이 전해졌을 때, 솔직히 저는 안도보다 긴장감이 먼저 들었습니다. 호르무즈 해협이라는 초크포인트, 즉 전략적 요충 해협이 '열렸다'는 것이 곧 '안전하다'는 의미가 아니라는 걸 경험으로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휴전은 안전이 아니라 '잠시 열린 창'이다
일반적으로 휴전이 선언되면 해상 항로도 안전해진다고 알려져 있지만, 제 경험상 이건 좀 다릅니다. 훈련 시나리오에서도 교전이 멈춘 직후가 오히려 가장 복잡한 국면이었습니다. 기뢰(수중에 설치해 선박을 폭파시키는 해저 폭발물), 소형 고속정, 드론 위협은 휴전 협정서에 서명한다고 해서 바다에서 사라지지 않습니다. 이것들은 그대로 남아 있고, 선박 보호 임무는 오히려 더 복잡해졌습니다.
이번 휴전의 본질을 냉정하게 보자면, 미국과 이란 모두 '선택지가 줄어든 상황에서 잠시 숨을 고른 것'에 가깝습니다. 이란은 경제난과 군사적 대응 한계에 내몰렸고, 미국은 커지는 정치·군사적 리스크 부담을 덜어야 했습니다. 양측 모두 절박함이 빚어낸 합의라는 뜻입니다.
그래서 지금 이 순간, 페르시아만에 발이 묶인 우리 선박 26척과 선원 173명의 귀환이 최우선입니다. 항행의 자유가 일시적으로라도 보장되는 이 창이 열려 있을 때 움직여야 합니다. 해협이 다시 닫히면 선택지 자체가 사라집니다.
초크포인트 통제권, 단순 지역 분쟁이 아니다
호르무즈 해협은 폭이 가장 좁은 구간이 약 39km에 불과합니다. 전 세계 원유 해상 수송량의 약 20%가 이 좁은 해협을 통과합니다(출처: 미국 에너지정보청(EIA)). 이 숫자 하나만으로도 이 해협이 왜 글로벌 공급망의 심장부인지 알 수 있습니다.
이란이 요구하는 해협 통제권은 단순한 영토 주권 주장이 아닙니다. 여기서 통제권이란 통행세 부과, 선박 검색권, 특정 국가 선박의 통행 제한 등을 실질적으로 행사하는 권한을 말합니다. 이란은 해협을 공유하는 오만과 손잡고 공동 관리 기구 형태로 이 권한을 행사하려 할 가능성이 있습니다.
지금까지 '자유항행 원칙'은 미국의 군사력이 사실상 보증해 왔습니다. 자유항행 원칙이란 어떤 국가의 선박도 공해와 국제 해협을 자유롭게 항해할 수 있다는 국제법적 권리를 의미합니다. 그런데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이번 사태에서 에너지 수입 의존국들을 향해 '알아서 하라'는 식으로 뒤로 물러섰습니다. 2차 세계대전 이후 80년 가까이 유지되어 온 이 원칙의 보증인이 처음으로 손을 뗀 것입니다. 이건 단순한 외교적 태도 변화가 아니라, 국제 질서의 지각변동입니다.
새로운 해협 질서와 한국의 선택
제가 직접 참여했던 훈련 중 기억에 남는 장면이 있습니다. 수송로가 일시적으로 열렸을 때, 작전 개념이 '방어'에서 '신속 회수·수송'으로 전환됩니다. 머뭇거리는 순간 창이 닫힙니다. 지금 한국 정부가 처한 상황이 정확히 그렇습니다.
한국과 프랑스, 영국 등 40여 개국은 현재 글로벌 협의체 채널을 구축해 공동 대응하고 있습니다. 이 협의체는 단순한 정보 공유 모임이 아니라, 미국 없는 새로운 해상 질서를 설계하는 사실상의 첫 번째 시도입니다. 한국이 여기서 수동적 관찰자에 머문다면, 나중에 완성된 규칙을 일방적으로 수용해야 하는 처지가 됩니다.
지금 한국이 집중해야 할 핵심 과제를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 페르시아만 억류 선박 26척, 선원 173명의 안전한 귀환 즉시 추진
- 중동산 원유 공급망 복구를 위한 민관 합동 총력 대응
- 40여 개국 글로벌 협의체 채널에서 해협 질서 설계에 적극 참여
- 호르무즈 의존도를 낮출 대체 수송로 확보 및 에너지 안보 전략 재정비
한국의 원유 수입 중 중동 의존도는 70%를 상회합니다(출처: 한국에너지공단). 이 구조에서 호르무즈 해협의 통제권이 바뀐다는 것은 우리 에너지 안보의 근간이 흔들린다는 의미입니다. 단기 대응과 중장기 구조 개편을 동시에 가동해야 합니다.
이번 사태가 보내는 진짜 신호
이번 미국·이란 휴전을 두고 '위기가 해소됐다'고 보는 시각도 있는데, 저는 그렇게 보지 않습니다. 협상 테이블에는 핵 개발 권리 인정, 경제 제재 완화, 전쟁 배상, 상호 불가침, 해협 통제권 등 미국이 쉽사리 받아들이기 어려운 조건들이 가득합니다. 레짐 체인지(regime change), 즉 이란 현 정권 교체라는 미국의 원래 목표도 달성됐다고 보기 어렵습니다. 휴전 이후 2주간의 협상이 타결로 이어질 가능성은 솔직히 낙관하기 힘듭니다.
일반적으로 유가가 폭락하고 주가가 폭등하면 위기가 끝났다고 시장이 반응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하지만 제 경험상, 바로 이 순간이 방심하기 가장 쉬운 때이기도 합니다. 전략적 초크포인트를 둘러싼 긴장은 서류상의 합의와 별개로 지속됩니다. 에너지 수송로가 인질로 잡히는 새로운 방식의 위기가 이번에 처음 글로벌 공급망에 현실화됐고, 이 구조적 문제는 휴전으로 해결되지 않습니다.
이번 사태는 단순한 중동 지역 분쟁이 아닙니다. 에너지 안보 전략 전체를 근본부터 다시 설계하라는 명확한 신호입니다. 해협이 열려 있는 지금, 선박을 빼오고 원유를 들여오는 것 이상을 해야 합니다. 새로운 질서가 만들어지는 이 시점에 적극적으로 참여해야 나중에 '우리만 빠진 규칙'을 강요받는 상황을 피할 수 있습니다. 이 글은 개인적인 경험과 의견을 공유한 것이며, 전문적인 외교·안보 정책 조언이 아닙니다.
참고: https://n.news.naver.com/mnews/article/082/0001375137?sid=1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