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동맹을 지킨다는 명분으로 병력을 보내는 게 과연 동맹을 지키는 일일까요. 군에서 오랜 시간 작전과 대비태세를 담당하면서 저는 이 질문을 수도 없이 마주쳤습니다. 지금 한국 정부가 마주한 호르무즈 해협 파병 문제도 결국 같은 질문입니다. 미국의 요구, 이란의 경고, 국내 여론 사이에서 어떤 기준으로 결정을 내릴 것인가.
동맹압박, 압박이라 부를 수 있을까
미국 트럼프 행정부가 한국의 파병 자산 배치를 기다리고 있다는 공식 입장을 밝힌 뒤, 국내 언론은 이를 '압박'이라는 단어로 일제히 보도했습니다. 저도 처음엔 그렇게 읽었습니다. 그런데 직접 겪어보니, 동맹 관계에서의 요구는 단순한 압박과는 다릅니다. 동맹이란 어느 한 쪽이 일방적으로 도움을 받는 구조가 아니라, 상호 필요한 부분을 분담하는 계약에 가깝습니다.
미국 측이 한국을 압박하는 논리의 핵심은 에너지 안보입니다. 한국은 중동 원유의 최대 수입국 중 하나이며, 호르무즈 해협은 한국으로 들어오는 원유의 상당 부분이 통과하는 길목입니다. 쉽게 말해, 한국이 그 지역에서 가장 많이 이익을 얻는 국가 중 하나라는 겁니다. 이런 맥락에서 미국의 요구를 단순히 '트럼프의 동맹 흔들기'로만 읽는 건 다소 단편적인 시각일 수 있습니다.
이재명 대통령도 프랑스 르몽드와의 인터뷰에서 한미동맹의 변화를 동맹 훼손이 아닌 시대 변화에 맞는 재조정으로 이해해야 한다고 밝혔습니다. 한국이 국방비를 늘리고 역할을 확대하는 방향으로 동맹을 발전시키는 것은, 어떻게 보면 오래전부터 예견된 수순이었습니다. 제 경험상 이건 어느 날 갑자기 생긴 문제가 아닙니다. 방위비 분담금 협상이 반복될 때마다 현장에서는 늘 "우리가 더 부담해야 하는 날이 온다"는 말이 돌았습니다.
다만 일각에서 이번 파병 논의를 방위비 협상이나 통상 압박과 직접 연결하는 시각에 대해서는 저는 신중하게 봐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군사적 파병을 경제적 거래처럼 접근하기 시작하면, 장기적으로 동맹의 신뢰 구조 자체가 흔들릴 수 있습니다. 파병은 외교 카드가 아니라 사람의 목숨이 걸린 결정이기 때문입니다.
교전규칙, 현장에서 가장 먼저 확인하는 것
군에서 임무를 부여받을 때 저는 항상 한 가지를 가장 먼저 확인했습니다. 교전규칙(ROE, Rules of Engagement)입니다. 교전규칙이란 아군이 어떤 상황에서 무력을 사용할 수 있는지, 어느 수준까지 대응할 수 있는지를 규정한 지침을 말합니다. 이게 명확하지 않으면 현장의 지휘관과 병사들이 판단의 공백 속에서 정치적 결정을 대신 떠안게 됩니다. 그게 얼마나 위험한 상황인지는 실제로 임무를 받아본 사람이라면 압니다.
지금 정부가 검토 중인 P-3 해상초계기 파병을 예로 들어보겠습니다. P-3 해상초계기란 해상 감시와 대잠수함 작전을 주 임무로 하는 초계 항공기로, 해양 정보 수집과 선박 식별에 특화된 자산입니다. 비전투 자산으로 분류되지만, 전쟁 지역에서는 이 구분이 별 의미가 없습니다. 감시·정찰 임무를 수행하는 항공기는 상대방 입장에서 군사작전을 지원하는 자산으로 인식될 수 있습니다. 이란이 한국군의 호르무즈 작전 참여에 대해 "심각한 결과를 초래할 것"이라고 경고한 것도 이런 맥락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파병을 결정한다면 아래 사항들이 반드시 먼저 확정돼야 합니다.
- 임무 범위: 해상교통로 감시, 선박 안전 확인, 구조·구난 지원 등으로 명확히 제한할 것
- 지휘체계: 미군 통합지휘 하에 편입될 것인지, 독자적인 지휘권을 유지할 것인지
- 자위권 행사 기준: 공격받았을 때 어느 수준까지 대응할 수 있는지
- 활동구역 제한: 충돌 가능성이 높은 구역에는 진입하지 않는 조건
- 긴급 철수계획: 상황이 악화됐을 때 즉각 철수할 수 있는 권한과 절차
이런 조건들이 불분명한 상태에서 동맹의 요구만을 이유로 파병이 결정된다면, 결국 가장 큰 부담을 지는 건 현장에 있는 우리 장병들입니다. 제가 현장에서 느낀 건, 정치적 결정의 빈자리는 항상 현장 사람들이 채운다는 점이었습니다.
국방부는 군수지원함 제외설 등 언론 보도에 대해 불확실한 사실에 기반한 추측이 안보에 부정적이라며 유감을 표명했습니다. 정부 소식통에 따르면 군이 여러 안을 보고한 상태이며 최종 결정은 정치적 영역에서 논의 중이라고 합니다. 이 구조 자체가 문제입니다. 군사적 타당성과 현장 실행 가능성이 정치적 결정보다 먼저 논의돼야 합니다.
국익판단, '무엇을 보내느냐'보다 '왜 보내느냐'
이번 파병 논의에서 저는 줄곧 한 가지 질문으로 돌아옵니다. 우리는 왜 보내는가. 이게 명확하지 않으면 장비를 무엇으로 보내느냐는 부차적인 문제가 됩니다. 같은 P-3 해상초계기를 파견하더라도, 임무가 해상교통로(SLOC, Sea Lines of Communication) 보호냐 특정 국가의 군사작전 지원이냐에 따라 파병의 성격은 완전히 달라집니다. 해상교통로란 국가 간 교역과 에너지 수송이 이루어지는 해상 항로를 뜻하며, 한국처럼 자원 수입 의존도가 높은 나라에는 사실상 경제 동맥입니다.
한국의 중동 원유 의존도를 생각하면 호르무즈 해협의 안전은 분명히 국가 이익과 직결됩니다. 실제로 한국은 원유 수입의 약 70% 이상을 중동에서 조달하고 있으며, 호르무즈 해협은 그 핵심 통로입니다(출처: 한국에너지경제연구원). 그런 의미에서 해상초계기를 통한 민간 선박 안전 확보와 해상 정보 수집은 한국이 독자적으로도 고려할 수 있는 임무입니다. 미국이 요구해서가 아니라, 우리 스스로의 이익 때문에 필요한 행동이 될 수 있습니다.
프랑스와의 협력 가능성도 이 맥락에서 의미가 있습니다. 이재명 대통령은 파리 방문 중 마크롱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가질 예정이며, 프랑스는 호르무즈 해협 통항 안전을 위한 국제 연대를 가장 적극적으로 주도해 온 국가 중 하나입니다. 미국-한국의 양자 구도가 아닌, 다국적 해상 안전 협력 체제 속에서 한국의 역할을 설정한다면 외교적 공간이 훨씬 넓어집니다. '미국 편에 서는 것'이 아니라 '국제 해상안전에 기여하는 것'으로 프레임 자체가 달라지기 때문입니다.
솔직히 이건 예상 밖이었습니다. 프랑스라는 변수가 이번 파병 논의의 성격을 결정하는 데 생각보다 큰 역할을 할 수 있다는 점이요. 유럽 주요국과의 다자 안보 협력은 한국 외교에서 아직 충분히 활용되지 않은 카드입니다. 이번 파리 정상회담이 단순한 문화·경제 협력에 그치지 않고 안보 협력의 가능성을 여는 자리가 된다면, 그 자체로 한국 외교의 폭을 넓히는 계기가 될 수 있습니다.
다만 한 가지만은 분명히 해야 합니다. 파병 결정이 정치적 메시지를 위한 수단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동맹에 대한 의지를 보여주는 방법은 여러 가지입니다. 방위비 분담, 무기 체계 공동 개발, 정보 공유 확대 등 군사적 파병 외에도 기여 방식은 다양합니다. 해외에 부대를 보내는 것만이 동맹 기여의 척도가 되어서는 안 됩니다.
파병 이후를 시뮬레이션해야 한다
제가 현장에서 배운 것 중 하나는, 해외 파병에서 가장 어려운 순간은 출발할 때가 아니라 위기가 발생했을 때라는 점입니다. 전쟁이 예상보다 확대되고 우리 장병이나 항공기가 공격을 받는 상황이 생겼을 때, 정부는 즉각적인 결단을 내려야 합니다. 그런데 그 결단을 내릴 준비가 돼 있는지가 더 중요한 질문입니다.
확전 가능성(escalation risk)이란 군사적 충돌이 의도치 않게 더 넓은 범위로 번질 위험을 말합니다. 현재 미국과 이란 사이의 군사적 긴장이 높아지는 상황에서, 호르무즈 해협에 배치된 한국 항공기가 분쟁에 휘말릴 가능성은 결코 낮지 않습니다. 이란 외무부가 한국과의 우호 관계를 중시한다면서도 "심각한 결과"를 경고한 것은 단순한 외교적 수사가 아니라 현장 장병들에게 직접적인 실질적 위협으로 작용합니다.
결국 진짜 안보는 '파병을 하느냐 마느냐'라는 정치적 구호나 선언 그 자체에 있지 않습니다. 위기 상황이 발생했을 때 현장의 장병들이 정치적 판단의 공백 속에서 고립되지 않도록 교전규칙을 정교하게 다듬고, 최악의 시나리오에서도 국익과 인명을 동시에 구하는 철저한 대비태세 및 철수 전략을 수립하는 데 있습니다. 동맹을 지킨다는 명분이 진정으로 가치를 가지려면, 현장에서 그 임무를 수행할 사람들의 안전과 국가의 장기적 이익이 가장 먼저 보장되어야 할 것입니다.
※ 본 포스팅은 개인적인 군 작전 및 안보 현장 경험을 바탕으로 작성된 주관적 비평 글이며, 정부나 국방부의 공식 입장을 대변하지 않습니다. 본 글에 인용된 중동 원유 의존도 관련 통계는 한국에너지경제연구원 공시 자료를 바탕으로 작성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