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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르무즈 해협 (초크포인트, 에너지 안보, 다국적 협력)

by 등대가 있는 언덕 2026. 4. 8.

호르무즈 해협을 지나는 한국 선박이 현재 26척입니다. 이 숫자를 처음 접했을 때 저는 단순한 통계가 아니라 26척 각각에 탑승한 선원들의 얼굴이 먼저 떠올랐습니다. 중동산 원유 의존도가 높은 한국 입장에서 이 해협이 막히는 건 단순한 물류 차질이 아니라 에너지 안보의 급소를 찌르는 일입니다.

호르무즈 초크포인트: 해협 하나가 국가 안보의 급소가 되는 이유

초크포인트(Chokepoint)란 선박이 반드시 통과해야 하는 지리적 병목 지점을 뜻합니다. 여기서 초크포인트란 단순히 좁은 해협이 아니라, 우회 시 비용과 시간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기 때문에 사실상 대체 불가능한 전략적 거점입니다. 호르무즈 해협이 바로 그 교과서적 사례입니다.

저는 과거 대부대 훈련에서 교두보 확보 작전을 수행한 경험이 있습니다. 그 훈련에서도 이런 병목 지점을 장악하거나 차단하는 시나리오를 반복적으로 다뤘는데, 체감상 해협 하나가 막히면 전체 작전 흐름이 완전히 뒤틀린다는 걸 느꼈습니다. 현재 호르무즈 해협 상황은 그 훈련 시나리오와 구조적으로 거의 일치합니다.

한국은 수입 원유의 상당 부분을 중동에서 조달하고 있고, 중국은 수입 원유의 42%, 액화천연가스(LNG)의 31%를 중동에 의존합니다. LNG란 천연가스를 액화시켜 부피를 줄인 형태로, 파이프라인 없이 선박으로 수송할 수 있어 해상 교통로가 막히는 순간 수급 자체가 불가능해집니다. 이런 구조적 의존성이 바로 해협 봉쇄가 단순 군사 충돌을 넘어 글로벌 에너지 위기로 번질 수 있는 이유입니다.

실제 비대칭 위협 환경도 무시할 수 없습니다. 훈련에서 저는 대함미사일이나 기뢰 같은 저비용 전력이 대형 함정과 상선에 얼마나 큰 위협이 되는지 반복해서 확인했습니다. 기뢰(Mine)란 수중에 부설하여 선박 접촉 또는 자기장 감지로 폭발하는 수중 무기로, 설치 비용은 낮지만 해상 교통로 전체를 마비시키는 데 충분한 수단입니다. 이란이 보유한 기뢰와 드론 전력은 이 시나리오를 현실로 만들 충분한 능력을 갖추고 있습니다(출처: 미국 에너지정보청 EIA).

에너지 안보: 중국의 입장 전환과 트럼프의 신호

중국은 그동안 이란-이스라엘 충돌에서 대화와 협상을 촉구하는 중립적 입장을 유지해 왔습니다. 그런데 최근 호르무즈 해협 봉쇄의 원인으로 처음 미국과 이스라엘을 지목하며 입장을 바꿨습니다. 저는 이 변화가 명분의 변화라기보다는 에너지 의존 구조가 만들어낸 현실적 선택이라고 봅니다.

트럼프 대통령은 호르무즈 해협과 미국의 관련성을 부인하며, 석유 수입국들이 스스로 항로를 책임져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이 메시지는 동맹국에 부담을 전가하는 동시에, 미국은 선택적으로만 개입하겠다는 신호입니다. 중국 입장에서는 "아쉬운 나라가 알아서 해결하라"는 압박으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고, 결국 미국과 이스라엘을 원인으로 직접 지목하는 방향으로 입장을 선회한 것입니다.

에너지 안보(Energy Security)란 국가가 필요한 에너지를 적정 가격에 안정적으로 공급받을 수 있는 상태를 의미합니다. 한국도 예외가 아닙니다. 에너지 수입 의존도가 극히 높은 한국은 해협 봉쇄가 장기화될 경우 전력 생산, 산업 가동, 물가 안정 모두가 흔들리는 복합 충격을 받을 수 있습니다. 국제에너지기구(IEA)에 따르면 한국은 에너지 자립도가 주요국 중 최하위권에 속하며, 이는 해상 수송로 안정이 국가 경제의 전제조건임을 뜻합니다(출처: 국제에너지기구 IEA).

이 상황에서 주목해야 할 또 다른 변수가 있습니다. 현재 에너지 수송 리스크를 높이는 요인들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 호르무즈 해협 봉쇄로 인한 중동산 원유 직접 수송 차단
  • 사우디아라비아의 홍해 우회 수송 경로 가동 중
  • 예멘 후티의 바브엘만데브 해협 봉쇄 위협 현실화 가능성
  • 이란의 아람코 거래 선박 통행 제한 방침 고수

이 네 가지 요인이 동시에 작동하기 시작하면, 수송로 우회는 가능하더라도 시간과 비용이 감당하기 어려운 수준으로 치솟게 됩니다.

다국적 협력: 한국이 선택할 수 있는 가장 현실적인 경로

한국 정부는 미국의 공식 파병 요청은 없었다는 입장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이란과의 직접 충돌을 최대한 피하면서도 트럼프 대통령의 요구를 정면으로 외면하기 어려운 딜레마 속에 있습니다. 솔직히 이건 어느 한쪽을 선택하면 다른 한쪽을 잃는 구조입니다.

저는 훈련 현장에서 반복적으로 느낀 게 있습니다. 단독으로 수행하는 작전보다 호송 체계와 정보 공유가 잘 구축된 다국적 협력 환경에서의 작전이 훨씬 효율적이고 안전하다는 겁니다. 호송 체계(Convoy System)란 복수의 상선이 군함의 보호 아래 집단으로 이동하는 방식으로, 개별 선박이 단독으로 위험 해역을 통과하는 것보다 피격 위험을 구조적으로 낮출 수 있습니다.

조현 외교부 장관이 일본 외무상과 항행 안전 대책을 협의하고, 영국 주도의 호르무즈 해협 외교 장관 회의가 열리는 것은 이런 맥락에서 긍정적인 신호입니다. 다만 제 경험상 이런 초기 외교 회의는 구체적 조치보다 공감대 형성에 머무는 경우가 많습니다. 실질적인 호송 체계 구축과 정보 공유 네트워크 강화로 이어지지 않으면 회의는 회의로만 끝납니다.

후티의 바브엘만데브 해협 봉쇄 위협도 간과할 수 없습니다. 바브엘만데브 해협이란 홍해 남쪽 출구로, 수에즈 운하와 인도양을 연결하는 핵심 항로입니다. 후티는 이미 2023년 11월부터 1년 이상 이 해역에서 상선 공격을 감행한 전례가 있습니다. 설령 한국과 일본 선박을 공격 대상에서 제외한다 해도, 어떤 형태로든 무력시위가 시작되면 홍해 전체가 사실상 봉쇄되는 효과가 발생합니다. 이 시나리오가 현실이 되면 우회 항로인 희망봉 경유 루트밖에 남지 않고, 수송 기간과 비용은 두 배 이상으로 뜁니다.

한국이 선택할 수 있는 가장 현실적인 경로는 결국 군사 단독 개입도, 완전한 소극 대응도 아닙니다. 원칙적 항행 자유를 지지하는 입장을 유지하면서, 다국적 협력 틀 안에서 실질적 호송 체계와 정보 공유에 참여하는 복합 대응이 제가 보기엔 가장 현실적인 선택입니다.

결국 이 상황은 특정 국가의 군사력 하나로 해결될 문제가 아닙니다. 에너지 수입 의존도가 높은 나라들이 공동 이익을 확인하고, 실질적인 수송 보호 능력을 함께 키워나가는 방향으로 움직여야 합니다. 호르무즈 해협과 바브엘만데브 해협이 동시에 흔들리는 최악의 시나리오가 오기 전에, 지금 외교 회의의 공감대가 구체적 행동으로 이어지길 바랍니다. 이 위기가 단순 지역 분쟁으로 끝날지, 글로벌 공급망 위기로 번질지는 앞으로 몇 주의 협상 결과에 달려 있습니다.


참고: https://www.youtube.com/watch?v=h59R8PuKqu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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