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직히 저는 이번 '문바사 B' 뉴스를 처음 접했을 때 단순히 "한국 배가 이란 해역에 들어갔다"는 식으로 읽었습니다. 그런데 군 생활에서 해상작전 위기 대응 훈련을 직접 경험한 입장에서 다시 들여다보니, 이게 한 척의 선박 문제가 아니라는 걸 금방 알 수 있었습니다. 핵심은 호르무즈 해협에 묶여 있는 37척의 선박과 그 안에 탄 선원들을 어떻게 안전하게 빼오느냐입니다.
호르무즈 해협: 선박 식별의 복잡성과 외교 딜레마
이번 사안을 이해하려면 먼저 선박 소유 구조부터 짚어야 합니다. '문바사 B'는 라이베리아 국적의 SPC(Special Purpose Company), 즉 특수목적법인이 공식 소유자로 등록되어 있습니다. SPC란 특정 자산이나 사업을 분리하기 위해 설립된 페이퍼컴퍼니 형태의 법인으로, 해운 업계에서는 세금 및 법적 리스크를 분산하기 위해 흔히 활용됩니다. 그리고 이 SPC의 실소유주가 장금마리타임이며, 실제 선박 운영은 용선주(Charterer) 자격으로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용선주란 선박을 소유하지 않고 일정 기간 빌려서 운항하는 주체를 뜻합니다.
제가 훈련에서 실제로 체감한 부분이 바로 이겁니다. 민간 선박의 선적 국적, 선주, 용선주, 화주(화물 주인), 승선 인원 국적이 전부 다른 경우가 비일비재합니다. 그래서 "이 배가 우리 배냐"는 질문 자체가 생각보다 훨씬 어렵습니다. 청와대 출입기자의 설명처럼 우리 정부의 관리 대상은 국적 선사, 우리 선원이 탑승한 선박, 우리가 용선주인 배, 우리가 화주인 배로 한정되는데, 이 기준에서 벗어난 선박은 설령 한국 기업이 실소유한다 해도 정부 모니터링 대상에서 빠집니다.
이러한 구조적 복잡성이 외교적 딜레마를 더욱 깊게 만듭니다. 한국은 미국과의 상호방위조약(한미동맹)을 근간으로 하는 동맹 관계를 유지하는 동시에, 이란과의 실무 협상 채널도 열어두어야 합니다. 상호방위조약이란 체약국 중 하나가 공격받을 경우 다른 체약국이 방어를 지원하기로 약속한 조약으로, 한국이 이란과 독자적으로 친밀한 협상을 진행할 경우 미국 측에서 이를 동맹 이탈 신호로 읽을 수 있습니다. 반대로 이란과의 관계가 경색되면 해협 안에 있는 우리 선원들이 직접적인 위협에 노출될 수 있습니다. 한국 정부가 처음에 이란의 선박 명단 요청을 거부한 것도 이 딜레마 안에서 나온 판단이었을 겁니다.
이런 상황에서 한국이 취할 수 있는 선택지를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 단독 협상: 이란과 직접 선박 명단을 공유하고 독자적으로 철수를 추진하는 방식. 속도는 빠를 수 있지만 미국의 반발을 살 가능성이 높습니다.
- 국제 공조: 관련국과 공동 채널을 통해 움직이는 방식. 시간이 걸리지만 외교적 리스크를 분산할 수 있습니다.
- 선별적 협력 전략: 국제 공조 틀 안에서 우리 이해관계를 명확히 관철하는 방식. 제 판단으로는 이것이 가장 현실적인 접근입니다.
한국의 대이란 교역 규모는 미국의 대이란 제재 강화 이후 급격히 줄었지만, 과거 이란산 원유 의존도를 고려하면 이 지역에서 완전히 발을 빼기도 어렵습니다(출처: 한국무역협회).
장금상선의 베팅과 37척 철수 전략
장금마리타임의 모회사인 장금상선의 정태순 회장이 대규모로 유조선을 사들이기 시작한 시점이 중동 정세 불안과 맞물렸다는 점은 시장에서도 회자되고 있습니다. 물론 이를 두고 음모론적 해석이 나오기도 합니다. 하지만 저는 이것을 내부 정보 의혹보다는 해운업 특유의 투기적 리스크 관리 차원에서 보는 것이 더 합리적이라고 생각합니다.
해운업에서 용선료는 BDI(Baltic Dry Index)나 유조선 운임 지표인 VLCC 스팟 레이트(Very Large Crude Carrier Spot Rate)에 크게 좌우됩니다. VLCC 스팟 레이트란 초대형 유조선 한 척을 단기 임대할 때 지불하는 시장 운임으로, 지정학적 긴장이 높아질수록 급등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코로나19 시기 컨테이너 쇼티지를 예측하고 수익을 낸 이력이 있는 경영진이라면, 이번에도 시장 구조적 흐름을 읽고 베팅했을 가능성이 충분합니다. 스위스 해운사 MSC가 장금상선에 자금을 대어 탱크선을 집중적으로 사들인 것도 이 같은 맥락으로 읽힙니다.
문제는 이런 민간 기업의 판단이 정부 외교와 충돌할 때입니다. '문바사 B'가 호르무즈 해협에 진입한 것이 이재명 대통령의 이스라엘 비판 발언과 시기적으로 겹치면서 "한국 정부가 이란과 협상해 선박을 밀어 넣었다"는 억측이 돌았습니다. 하지만 제 경험상, 실제 작전 현장에서 이런 식의 민감한 움직임은 정부가 개입해 조율하는 게 아니라 민간 선사가 독자적으로 판단해 이미 정해진 루트를 따라 움직이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기름을 싣고 들어간 빈 탱크선이 탱크 역할을 하는 것 자체는 이미 정해진 운항 스케줄에 따른 것이라는 설명이 더 설득력 있습니다.
결국 핵심 숫자는 37이라는 점을 다시 강조하고 싶습니다. 호르무즈 해협에 갇혀 있는 선박 26~37척 중 유조선만 7척으로 파악되고 있습니다. 집단 철수 작전(mass evacuation operation)이란 다수의 선박을 동시에, 안전하게, 외교적으로 승인된 경로로 이동시키는 작전을 말하는데, 이것이 한 척을 빼내는 것보다 훨씬 난이도가 높다는 건 훈련에서 충분히 체감했습니다. 국제해사기구(IMO) 역시 분쟁 해역에서의 선원 보호와 선박 안전 운항에 관한 가이드라인을 별도로 운영하고 있을 만큼, 이런 상황은 국제 규범의 틀 안에서 다뤄져야 합니다(출처: 국제해사기구 IMO).
한 척이 들어갔다고 잘한 것도, 한 척이 빠져나왔다고 못한 것도 아닙니다. 여론이 개별 선박의 움직임 하나하나에 집중할수록, 실제 협상 테이블에 앉아 있는 실무자들의 판단에 불필요한 압박이 가해집니다. 지금 이 사안에서 감정적 반응보다 구조적 시각이 필요한 이유가 바로 거기 있습니다.
정리하면, 이번 호르무즈 사태는 단순한 선박 분쟁이 아닙니다. 선박 소유 구조의 복잡성, 한미동맹과 이란 실무의 충돌, 민간 해운사의 시장 판단이 모두 얽힌 복합 위기입니다. 중요한 건 여론의 흐름이 외교 실무를 방해하지 않는 것이고, 우리가 집중해야 할 것은 37척 전체의 안전한 철수라는 사실을 잊지 않는 것입니다. 이런 위기일수록 소음보다 구조를 보는 시각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