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를 보다가 문득 군 시절 한 훈련이 떠올랐습니다. 다국적 연합작전 중 한 지휘관이 단편적인 정보만으로 성급한 판단을 내렸고, 그 결과 작전 전체가 한쪽으로 뒤틀렸던 기억입니다. 호르무즈 해협을 둘러싼 지금의 상황을 보면서 그때의 긴장감이 다시 살아납니다. 미국이 이란을 압박하는 이 시점에, 한국 외교의 선택은 생각보다 훨씬 무거운 결과를 불러올 수 있습니다.
호르무즈 해협에서 사라진 대함미사일 위협, 미국의 압박은 현실이다
4월 11일, 미 해군 에이브러햄 링컨 항모 전단이 이란 남부 항구도시 차바하르에서 직선 거리 190km 지점까지 접근했습니다. 항모전단(Carrier Strike Group)이란 항공모함을 중심으로 이지스 구축함, 잠수함, 지원함 등이 편성된 해군 핵심 전력 단위입니다. 현재 링컨 항모를 포함해 이지스 구축함 9척, 강습상륙함, 대형 도크형 상륙함 등 총 15척이 호르무즈 해협 코앞에 전개된 상황입니다.
제가 직접 겪어보니, 항모 전단이 적국 해안선에서 200km 이내로 진입한다는 건 단순한 무력 시위가 아닙니다. 그것은 "우리는 이미 당신의 방어선을 무력화했다"는 메시지입니다. 실제로 이번 링컨 항모의 접근은 이란이 오랫동안 '항모 킬러'라고 선전해 온 아브마흐디 대함 미사일, 누르 시리즈 대함 미사일이 사실상 위협이 되지 않는다는 점을 전 세계에 공개 증명한 것이기도 합니다. 여기서 대함 미사일(Anti-Ship Missile)이란 적의 함선을 격침시키기 위해 특화된 유도 무기로, 이란의 비대칭 전력 핵심이었습니다. 그런데 지대함 미사일 전력 대부분이 이미 파괴된 지금, 이란의 해협 통제권 주장은 군사적 근거를 잃은 상태입니다.
미국은 조지 부시 항모 전단까지 중부사령부(CENTCOM)에 추가 배속할 예정이며, 호르무즈 해협의 강제 개통 작전이 본격화될 것으로 보입니다. 중부사령부(USCENTCOM)란 중동, 중앙아시아 등 21개국을 담당하는 미 통합전투사령부로, 이 지역의 군사 작전을 총괄 지휘합니다(출처: 미 중부사령부). 이런 상황에서 트럼프 대통령은 이란에 통행료를 납부한 모든 선박을 수색하고 차단하겠다고 공식 경고했습니다.
이란의 호르무즈 해협 통행료 요구와, 그에 대한 이 시점에서의 한국 정부의 대응을 두고 우려가 나오는 건 충분히 이해됩니다. 현재 상황의 핵심 리스크를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 미 해군의 통행료 납부 선박 차단 경고로 한국 국적선 나포 가능성
- 관련 외교 당국자에 대한 미국의 독자 제재(Secondary Sanction) 발동 가능성
- 트럼프 행정부 특성상 추가 관세 등 경제적 압박으로 연결될 가능성
독자제재(Secondary Sanction)란 제재 대상국과 거래한 제3국 기업이나 개인에게도 미국이 직접 제재를 가하는 조치로, 한국처럼 대미 무역 의존도가 높은 국가에는 치명적인 도구입니다.
항모전단 앞에서 한국 외교가 선택해야 할 균형외교
이란 측이 암호화폐로 통행료를 납부하라고 발표하자마자 한국 외교부가 외교 장관 통화에 이어 특사를 급파했다는 보도가 나왔습니다. 일부에서는 이를 곧바로 '친이란 행보'로 해석하는 시각도 있는데, 저는 여기서 조금 다른 각도로 봐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제 경험상, 위기 상황에서 외교 채널을 여러 방향으로 동시에 가동하는 것 자체는 일반적인 대응 방식입니다.
실제로 과거 연합훈련에서도 저는 비슷한 장면을 목격했습니다. 교전 가능성이 있는 지역에서 아군 선박 정보를 상대방에게 넘기는 행위는 맥락에 따라 피아식별(IFF, Identification Friend or Foe)을 위한 안전 조치가 되기도 합니다. 피아식별이란 아군과 적군을 구분하기 위한 체계로, 오인 사격과 오인 나포를 막는 기본 안전장치입니다. 한국 국적선 26척의 정보를 이란에 넘긴 것도, 정부 측 설명대로라면 우발적 타격 방지를 위한 조치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문제는 '맥락'입니다. 이란이 통행료를 공식 요구한 직후에 이루어진 일이라는 타이밍, 그리고 트럼프 행정부가 이를 어떻게 읽을 것인가 하는 정치적 현실을 분리해 볼 수 없습니다. 제가 솔직히 말하면, 군사적 실무 논리와 정치적 해석 사이의 간극이 가장 위험한 순간이 바로 지금 같은 시기입니다.
미국 외교안보연구원(USIP)에 따르면, 호르무즈 해협을 통과하는 세계 원유의 약 20%가 이 지역 분쟁으로 직접 영향을 받으며, 관련국의 균형외교 실패는 경제 제재와 에너지 공급망 불안으로 이어진다고 분석한 바 있습니다(출처: 미국 평화연구소(USIP)). 한국은 에너지의 상당 부분을 중동에서 수입하는 구조인 만큼, 이 해협에서의 외교적 오판은 경제 전반에 직접 파장을 줍니다.
이재명 대통령이 이스라엘을 '지구를 침공한 외계인'에 비유하는 등 감정적 언어를 사용한 것, 그리고 국민의 비판에 "명인전 훈수를 뜨냐"고 응수한 것은 제가 보기에도 외교적 언어로서는 분명 부적절했습니다. 외교는 감정이나 인식이 아니라 위험 최소화와 손실 관리라는 냉정한 기준으로 움직여야 하기 때문입니다.
결국 지금 한국 외교에 필요한 건, 미국과의 동맹 유지와 국적 선원의 안전 확보라는 두 가지 목표를 동시에 붙잡는 균형외교입니다. 어느 한쪽을 감정적으로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실용적 국익 계산 위에서 결정을 내려야 합니다. 군 시절 제가 배운 핵심도 결국 그것이었습니다. 위기일수록 판단의 근거는 단순해야 하고, 그 기준은 항상 "우리 국민이 안전한가, 국익이 보호되는가"여야 합니다.
지금처럼 항모 전단이 이란 해안 코앞에 전개된 상황에서, 한국 외교가 어떤 선택을 내리느냐는 앞으로 몇 주 안에 실질적인 결과로 나타날 것입니다. 상황을 단편적인 정치 프레임으로 해석하기보다, 작전적 맥락 전체를 보면서 냉정하게 판단하는 시각이 필요한 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