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라엘이 헤즈볼라 수뇌부 40여 명을 제거했음에도 불구하고 조직이 붕괴되지 않았습니다. 과거 현역 때 군 작전 계획을 수립했던 경험이 있던 저로서는 이 뉴스를 처음 접했을 때 솔직히 그다지 놀라지 않았습니다. 표적을 제거했는데 조직이 살아남는 이유, 그 구조를 직접 들여다본 적이 있기 때문입니다.
헤즈볼라의 사회구조: 군사 표적이 아닌 레바논의 뼈대
헤즈볼라를 단순한 무장 단체로만 보고 작전 계획을 세운다면 작전 판단을 처음부터 잘못 세우게 됩니다. 저는 군 복무 시절 비정규전(Irregular Warfare) 환경에서의 적 침투 도발 시나리오를 반복적으로 다뤘습니다. 비정규전이란 정규 군사력 간의 정면충돌이 아니라, 게릴라·민병대·지하 조직 등이 사회 구조 안에 침투하여 활동하는 형태의 전쟁을 말합니다. 이 환경에서 제가 얻은 결론은 분명했습니다. 이런 조직의 작전 목표는 '격멸'이 아니라 '약화와 고립'으로 설정해야 합니다.
헤즈볼라는 레바논 의회에 의원을 배출하는 정당이기도 하고, 병원과 학교를 운영하는 복지 조직이기도 하며, 레바논 정규군보다 강한 전력을 보유한 시아파 민병대이기도 합니다. 레바논의 정치 기구를 살펴보면 대통령은 마론파 기독교인, 총리는 수니파, 국회의장은 시아파가 맡는 종파 분립(Confessionalism) 구조를 채택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종파 분립이란 국가 권력을 종교 집단별로 배분하는 정치 체제로, 레바논에서는 이 구조가 1943년 독립 이후 현재까지 유지되고 있습니다. 문제는 이 구조가 특정 종파의 민병대가 국가 권력 위에 올라서는 것을 막기 어렵다는 점입니다.
레바논 정부가 헤즈볼라를 통제하지 못하는 것은 의지의 문제가 아닙니다. 헤즈볼라의 군사력이 레바논 정규군을 압도하는 상황에서 무장 해제 요구는 사실상 공문(空文)에 불과합니다. 미국과 이스라엘이 레바논 정부에 무장 해제를 요구했을 때 레바논이 이를 포기한 것도 이 맥락에서 이해해야 합니다. 제 경험상 이런 구조에서는 국가 기관이 비정규 조직의 영향력을 제어하려 해도, 물리적 힘의 역전이 일어난 순간 이미 국가 기관은 통제 능력을 상실했다고 봐야 합니다.
헤즈볼라가 군사적으로 반복 타격을 받아도 재건을 거듭하는 이유는 바로 이 사회 기반망 때문입니다. 조직의 핵심 기능이 복지·정치·군사 세 축에 걸쳐 있으니, 군사적 타격 하나로 모든 축이 동시에 흔들리지 않습니다. 헤즈볼라를 제거하고 싶다면 이란의 자금과 무기 지원이라는 외부 공급선을 끊는 것이 선결 조건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인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헤즈볼라가 작동하는 방식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 정치 기반: 레바논 의회 내 의석 보유, 정당으로서의 합법적 지위 유지
- 복지 네트워크: 병원·학교·사회 서비스 운영으로 시아파 민심 장악
- 군사력: 레바논 정규군 능가하는 전력, 이란 혁명수비대(IRGC)의 자금·무기 지원
- 외부 지원: 이란의 대리 세력 구조 안에서 지속적인 보급선 유지
비대칭전력과 이란 지원: 왜 군사적 해법은 한계에 부딪히는가
후티 반군의 홍해 작전을 보면서 저는 다시 한번 비대칭 전력(Asymmetric Warfare Capability)의 무서움을 실감했습니다. 비대칭 전력이란 열세한 쪽이 강대국의 정규 전력에 정면 대응하는 대신, 값싼 수단으로 상대의 고비용 체계를 흔드는 전술을 말합니다. 후티 반군은 저비용 드론과 미사일 한 발만으로도 선박 보험료를 급등시켜 홍해 통항을 사실상 마비시킵니다. 수억 달러짜리 구축함이 수백만 원짜리 드론을 요격하는 데 수십억 원을 씁니다. 전장에서 시간을 끌고 비용을 높이는 쪽이 유리해진다는 건 교범에도 나오는 이야기지만, 실제 훈련에서 이 시나리오를 반복적으로 다뤄보면 그 체감이 완전히 다릅니다.
후티 반군의 공식 명칭은 '안사룰라'입니다. 1962년 무너진 예멘 북부 시아 왕국의 후예들이 세운 조직으로, 이란의 직접 창설이 아니지만 이란과 시아파 연대를 공유하며 자금과 무기를 지원받는 관계입니다. 영국 왕립합동군사연구소(RUSI)는 이란이 후티 반군에 미사일 기술과 군사 훈련을 제공해 왔다는 분석을 여러 차례 발표한 바 있습니다(출처: RUSI).
이란이 이 대리 세력 구조를 유지하는 이유는 명확합니다. 직접 개입 없이 지역 내 통제권을 유지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헤즈볼라, 후티, 이라크 시아파 민병대로 이어지는 이 네트워크는 이른바 '저항의 축(Axis of Resistance)'으로 불립니다. 저항의 축이란 이란을 중심으로 중동 전역에 형성된 반미·반이스라엘 성향의 무장 조직 연합체를 가리킵니다. 이 구조에서 이란 혁명수비대(IRGC)가 담당하는 역할은 각 조직에 대한 자금·무기·훈련의 공급선을 유지하는 것입니다. 이란이 이 공급선을 끊지 않는 한 헤즈볼라의 군사 재건은 반복됩니다.
이란 내부 상황도 단순하지 않습니다. 미국과 이스라엘이 이란의 핵심 지도부 40여 명을 제거하는 데 성공했지만, 이란 정권은 붕괴되지 않았습니다. UN 인권최고대표사무소(OHCHR)는 이란 내 시위 과정에서 최소 수천 명이 사망했다고 추정하지만(출처: OHCHR), 시위대가 정권 교체의 동력으로 이어지지 않은 배경에는 이란 정부의 강력한 정보 통제와 내부 보수 지지층의 결속이 있었습니다. 제 판단으로는 이란 체제가 외부 충격으로 단기간에 무너질 구조가 아닙니다. 최고 지도자에게 과도한 권한이 집중된 현 헌법 체계 안에서, 지도부 한두 명의 제거가 시스템 전체를 흔들기엔 한계가 있습니다.
결국 이 지역의 갈등 구도는 군사적 승패로 귀결되는 전쟁이 아닙니다. 정치·종파·외부 지원이 복잡하게 얽힌 분쟁을 군사력 하나로 해소하려는 시도는, 제가 작전 계획을 세울 때 가장 경계하던 오류인 민간요소를 등한시한 것과 정확히 겹칩니다. 즉 정치, 경제, 여론 등을 고려하지 않고 단순히 군사 표적만을 제거하면 문제가 해결된다는 착각을 말합니다.
이 분쟁 구조에서 현실적으로 가능한 접근은 완전한 제거가 아니라, 영향력 약화와 공급선 차단입니다. 이란의 대리 세력 지원망이 유지되는 한, 이스라엘의 군사 작전은 헤즈볼라를 반복 재건하는 사이클을 끊지 못할 것입니다. 중동의 이 갈등을 이해하려면 전선의 전황보다 그 뒤에 있는 정치·종파 구조를 먼저 보시길 권합니다. 전쟁의 겉모습은 군사 작전이지만, 그 본질은 여전히 정치의 문제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