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이 트럼프의 대화 제안에 단거리 탄도미사일 발사로 응수했습니다. 34년 넘게 군복을 입고 한미연합훈련 현장을 직접 경험한 저로서는, 이 장면이 단순한 외교 뉴스로 읽히지 않습니다. 훈련 축소 논의가 나올 때마다 드는 생각이 있습니다. 억제력이란 말로 만들어지는 게 아니라는 것입니다.

억제력, 일반적으로 알려진 것과 현장의 현실
억제력(抑制力, deterrence)이란 상대방이 먼저 공격하지 못하도록 만드는 군사적·외교적 능력을 뜻합니다. 흔히 무기 수량이나 병력 규모로 억제력을 평가하는 경향이 있는데, 저는 그 시각에 동의하지 않습니다. 34년간 참모와 지휘관을 거치면서 절실하게 깨달은 것이 있습니다. 종이 위에 아무리 훌륭한 작전계획이 있어도, 반복 숙달 없이는 실전에서 작동하지 않는다는 사실입니다.
한미연합작전은 언어도, 지휘 절차도, 장비 체계도 다른 두 나라 군대가 하나의 지휘 아래 움직이는 구조입니다. 연합지휘통제체계(C2, Command and Control)란 두 나라 군이 실시간으로 상황을 공유하고 명령을 주고받는 통합 체계를 말합니다. 이것이 평소 훈련으로 숙달되지 않으면 위기 순간에 결정적으로 삐걱거립니다. 저는 그 장면을 훈련장에서 여러 차례 목격했습니다.
일반적으로 훈련 규모를 줄여도 작전계획은 유지된다고 알려져 있지만, 제 경험상 이건 좀 다릅니다. 계획의 존재와 계획의 실행 가능성은 전혀 다른 문제입니다. 평소 손발이 맞지 않은 두 군대가 전쟁 개시 직후 완벽하게 통합 작전을 펼칠 것이라고 기대하는 것은, 리허설 없이 공연을 올리는 것과 같습니다.
북한이 핵무기와 미사일 능력을 지속 고도화하고 있는 지금, 재래식 전력 숫자만으로 억제력을 측정하는 것은 더욱 위험합니다. 북한이 전술핵 탑재가 가능한 600mm 초대형 방사포를 전방에 배치하려는 것은 바로 그 계산이 깔려 있습니다. 이런 상황일수록 연합방위태세의 실질적 수준이 더 중요해집니다.
한국패싱, 협상 테이블에서 배제되는 시나리오
한국패싱(Korea passing)이란 한반도 문제를 다루는 외교 협상에서 당사국인 한국이 핵심 결정에서 배제되는 상황을 말합니다. 북미 정상 간 직접 협상이 본격화될 때마다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우려입니다. 저는 이것이 단순한 외교적 자존심 문제가 아니라, 직접적인 안보 위협이라고 생각합니다.
트럼프 대통령이 외교적 성과에 급급해 주한미군 주둔, 한미연합훈련, 대북제재 같은 사안을 한국과 충분히 협의하지 않은 채 결정한다면 어떻게 될까요. 대한민국은 협상의 당사자이면서도 정작 중요한 결정의 바깥에 놓이는 이상한 위치에 서게 됩니다. 카네기 국제평화재단(Carnegie Endowment for International Peace)의 분석에 따르면(출처: 카네기 국제평화재단), 한미 간 신뢰 회복과 대북 정책의 일관성 확보가 생산적 대화의 선결 조건입니다.
과거 1차 북미정상회담 전후를 떠올려 보면, 그때도 같은 우려가 있었습니다. 지금은 상황이 더 복잡합니다. 과거 트럼프의 독단적 결정을 어느 정도 제어하던 제임스 매티스 전 국방장관, 존 켈리 전 비서실장 같은 참모진이 지금은 없습니다. 과도한 양보를 내부에서 걸러줄 사람이 없다는 것이 지금의 가장 큰 위험 요소라고 봅니다.
미국이 북한의 미사일 발사에 '즉각적인 위협이 아니다'라며 원론적 반응을 보이는 것도 저는 그냥 지나치지 않습니다. 동맹국이 도발을 당했을 때 동맹이 보내는 첫 번째 메시지, 그것이 쌓이면 결국 억제력의 신뢰도가 됩니다.
북미협상, 대화 자체보다 조건과 과정이 핵심
저는 트럼프 대통령이 북한과 대화를 시도하는 것 자체를 부정적으로 볼 필요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한반도 긴장을 낮추고 북한의 핵·미사일 문제를 관리하려면 대화가 필요합니다. 문제는 어떤 조건에서, 무엇을 주고 무엇을 얻느냐입니다.
북한의 협상 패턴을 보면 일정한 흐름이 있습니다. 대화와 도발을 교차하며 협상력을 극대화하는 방식입니다. 트럼프의 대화 제안에 냉랭하게 반응하면서 동시에 미사일을 발사하는 것은 무력시위가 아니라, '조건을 먼저 충족하라'는 정치적 메시지입니다. 김여정 부장의 담화가 한미연합훈련 축소를 평가절하하고 한국 대통령을 실명 비난한 것도 같은 맥락입니다. 대화 채널을 유지하면서도 한미동맹의 본질을 흔들겠다는 의도를 노골적으로 드러낸 것입니다.
북한이 요구하는 '적대시 정책 철회'가 구체적으로 무엇을 의미하는지 냉정하게 따져봐야 합니다. 비핵화 의지(denuclearization intent)란 핵 프로그램을 실질적으로 포기하거나 제한하려는 정치적 의지를 말하는데, 현재 북한에서 그 신호는 찾기 어렵습니다. 오히려 핵보유국 지위를 고착화하면서 최대한의 양보를 얻어내려는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성과에 집착하는 트럼프와 그 북한 사이의 협상이 향하는 방향이 어디인지, 우리는 면밀하게 주시해야 합니다.
아래는 현재 북미협상 국면에서 우리 정부가 특히 주의해야 할 핵심 사항입니다.
- 한미연합훈련 조정은 동맹 간 충분한 협의를 거쳐야 하며, 미 대통령의 일방적 발언으로 결정되어서는 안 됩니다.
- 북한의 '적대시 정책 철회' 요구가 주한미군 철수나 동맹 해체 방향으로 연결되는지 조건을 면밀히 검증해야 합니다.
- 북미 간 협의 과정에서 주한미군, 대북제재, 연합훈련 등 한국 안보 핵심 사안에 대해 한국의 의견이 반드시 반영되어야 합니다.
- 협상 성과의 속도보다 내용과 원칙을 우선해야 하며, 단기적 외교 성과에 안보의 기반을 맞교환하는 구조를 경계해야 합니다.
전망, 강한 동맹이 있어야 넓은 외교 공간이 생긴다
한미동맹과 북미대화는 서로 반대되는 선택지가 아닙니다. 오히려 강력한 동맹이 뒷받침될 때 북한과의 협상에서도 우리가 더 유리한 위치를 갖습니다. 상대방이 우리의 군사 대응 능력을 의심하지 않을 때 비로소 외교적 공간도 넓어집니다. 이것은 이론이 아니라 제가 군 생활에서 경험으로 배운 것입니다.
미국 의회에서도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습니다. 공화당 톰 틸리스 상원의원이 한미연합훈련 축소가 북한과 적대국에 잘못된 신호를 줄 수 있다고 경고하는 서한을 보낸 것은 같은 맥락입니다. 동맹 내부에서조차 경고음이 나오고 있다는 사실을 우리 정부는 가볍게 넘기면 안 됩니다. 미국 의회조사국(CRS, Congressional Research Service)도 한미동맹의 전략적 가치와 연합훈련의 중요성을 지속적으로 강조해 왔습니다(출처: 미국 의회조사국 CRS).
일반적으로 대화 국면에서는 군사 압박을 줄여야 협상 분위기가 조성된다고 알려져 있지만, 저는 그 논리에 선을 긋습니다. 훈련을 줄이는 것과 대화를 여는 것은 별개의 문제입니다. 훈련은 외교적 메시지가 아니라 실전 준비입니다. 그것을 협상 카드로 쓰는 순간, 억제력은 조금씩 빠져나가기 시작합니다.
가장 위험한 순간은 적이 강해질 때만이 아닙니다. 우리 스스로의 의지와 능력에 대해 상대방이 의심하기 시작할 때입니다. 그 의심이 싹트지 않도록 하는 것, 그게 억제력의 본질이고 34년간 군에서 제가 배운 가장 현실적인 교훈입니다.
트럼프 대통령의 발언 하나하나에 일희일비할 필요는 없습니다. 하지만 우리 정부는 분명한 원칙을 세워야 합니다. 북미대화는 환영하되, 대한민국의 안보를 협상 테이블 위에 올려서는 안 됩니다. 한미연합훈련은 정치적 흥정의 대상이 아니라 국민의 생명을 지키기 위한 군사적 준비입니다. 지금 이 순간, 그 원칙을 흔들림 없이 지키는 것이 우리 정부가 해야 할 가장 중요한 일입니다.
※ 이 글은 개인적인 경험과 의견을 공유한 것이며, 전문적인 군사·외교 정책 조언이 아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