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필리핀이 자국 해양 영역을 법으로 못 박자, 중국은 즉각 스카버러 암초를 자국 영해에 포함하는 새 기준선을 발표했습니다. 34년 군 생활을 돌아보면 이런 장면은 낯설지 않습니다. 말보다 행동이 먼저 나오는 순간, 분쟁은 새로운 국면으로 접어듭니다. 남중국해는 지금 딱 그 시점에 와 있습니다.
갈등 배경: 구단선 하나가 만들어낸 30년의 화약고
제가 현역 시절 국제 안보 환경을 분석할 때 늘 강조했던 원칙이 있습니다. "상대방의 주장과 실제 행동을 따로 보라"는 것이었습니다. 말로는 대화를 원한다고 하면서 동시에 해경을 증파하는 나라가 있다면, 우리는 말이 아니라 행동을 봐야 합니다. 남중국해 문제가 딱 그렇습니다.
중국이 주장하는 구단선(九段線, Nine-Dash Line)은 남중국해 전체 면적의 약 90%를 자국 권리 범위로 설정한 경계선입니다. 쉽게 말해 남중국해 대부분을 중국 앞마당으로 보겠다는 뜻입니다. 이 주장은 역사적 관습과 자국법을 근거로 하고 있지만, 국제법적으로는 이미 2016년에 정면으로 부정당했습니다.
2016년 국제상설중재재판소(PCA, Permanent Court of Arbitration)는 중국의 구단선 주장이 유엔해양법협약(UNCLOS, United Nations Convention on the Law of the Sea)상 아무런 법적 근거가 없다고 판결했습니다. UNCLOS란 각국의 배타적 경제수역(EEZ)과 영해 범위를 규정하는 국제 해양법의 핵심 조약으로, 현재 168개국이 비준한 사실상의 국제 표준입니다. 중국도 이 협약에 서명했지만, 판결에는 불복하며 지금도 구단선 주장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저는 이 부분이 이 분쟁의 본질을 가장 잘 드러낸다고 봅니다. 국제법을 편의에 따라 적용하는 나라와, 그 법을 방패로 쓰는 나라가 같은 테이블에 앉아 있는 상황이기 때문입니다.
해양 분쟁이 육상 국경 분쟁보다 훨씬 복잡하다는 것은 군 생활 내내 몸으로 느꼈습니다. 바다 밑에는 원유와 천연가스가 묻혀 있고, 수면 위로는 세계 물동량의 상당 부분이 이 해역을 통과합니다. 단순한 영토 싸움이 아니라 에너지 안보와 해상 교통로 통제권이 동시에 걸린 문제입니다. 미국, 일본, 호주, 한국이 모두 이 지역에 촉각을 곤두세우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법률전: 법안 하나가 외교 폭풍을 부른 이유
필리핀 마르코스 대통령이 서명한 두 법안, '해양구역법'과 '군도해로법'이 이번 갈등의 직접적인 도화선이 됐습니다. 해양구역법은 필리핀의 배타적 경제수역(EEZ, Exclusive Economic Zone)을 명확히 법제화한 것입니다. EEZ란 자국 해안선으로부터 200해리까지의 수역에서 어업, 자원 탐사, 환경 보호 등에 대한 주권적 권리를 행사할 수 있는 범위를 뜻합니다. 군도해로법은 외국 군함과 항공기가 필리핀 군도를 통과할 수 있는 경로를 규정한 것으로, 군사·민간 항로에 모두 영향을 미칩니다.
필리핀이 국제법이 이미 보장한 권리를 단순히 국내법으로 명문화한 것인데 왜 이게 문제가 되느냐는 시각도 있습니다. 하지만 저는 좀 다르게 봅니다. 실제로는 이 법안이 추가로 담은 내용, 즉 분쟁 지역 내 영토와 자원에 대한 주권을 공식 재확인하고 새 공식 지도 출시까지 예고했다는 점에서 중국 입장에서는 단순한 행정 입법이 아니라 선전포고에 가까운 행동으로 읽혔을 것입니다.
중국의 반응은 즉각적이었습니다. 주중 필리핀 대사를 불러 항의하고, 스카버러 암초를 자국 영해에 포함하는 새로운 영해 기준선을 발표했습니다. 이어 해경의 해당 해역 순찰과 법 집행을 강화하겠다고 공언했습니다. 이른바 법률전(法律戰, Lawfare)의 전형적인 모습입니다. 법률전이란 군사력 충돌 없이 법과 제도를 무기로 상대국을 압박하는 전략을 뜻합니다. 요즘은 이것이 회색지대 전략의 핵심 수단 중 하나로 자리 잡았습니다.
이번 상황을 보면서 남중국해에서 앞으로도 계속될 충돌 유형이 어느 정도 명확해진다고 느꼈습니다. 아래 네 가지가 반복될 가능성이 가장 높다고 봅니다.
- 해경선과 어선 간 충돌 및 수위 조절 — 전면전은 피하면서 실효 지배를 기정사실화하는 방식
- 해양 민병대(Maritime Militia) 운용 — 민간 어선을 동원해 법적 책임을 흐리는 전술
- 법률전(Lawfare) — 자국에 유리한 법과 기준선을 선제 발표하여 기정사실을 만드는 방식
- 외교전 — 우방국 연대와 국제여론 형성을 통한 상대국 고립 시도
실제로 한국, 미국, 일본 3국은 이번 사태와 관련해 항행의 자유와 UNCLOS 준수를 공동으로 강조했습니다. 한미일이 남중국해 문제에서 이렇게 공동 입장을 낸 것은 단순한 외교적 선언이 아니라 인도-태평양 전략 차원의 연대 신호로 읽어야 합니다. 한편, 미국은 왕이 외교부장과의 회담에서 시진핑 주석의 방미 일정도 논의했지만, 중국 측은 아직 구체적 확인을 미루고 있습니다. 협박과 대화가 동시에 진행되는 전형적인 강압 외교의 패턴입니다. 국제법 분야에서 권위 있는 정보는 국제해양법재판소(ITLOS) 공식 사이트에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한국 대응: 남의 일로 볼 수 없는 이유
솔직히, 남중국해 문제를 한국과 직접 연결 짓는 분들이 아직 많지 않다는 게 저는 늘 아쉬웠습니다. 34년 군 생활 내내 부대원들에게 했던 말이 있습니다. "평화는 힘의 균형 위에서 유지된다." 이 말은 한반도에만 해당하는 게 아닙니다.
우리나라 에너지 수입의 상당 부분, 특히 중동산 원유와 LNG는 남중국해를 통과합니다. 이 해역에서 무력 충돌이 발생하거나 항로가 막히면, 에너지 수급과 물가에 직접 영향이 옵니다. 우리가 수출 중심 경제를 운영하는 한, 이 뱃길은 우리 경제의 생명선이나 다름없습니다.
일부에서는 한국이 중국과의 경제 관계 때문에 이 문제에서 중립을 지켜야 한다고 말하는데, 저는 그 논리가 오히려 위험하다고 봅니다. 중립이 아니라 원칙을 지키는 것이 장기적으로 훨씬 안전합니다.
한국의 현실적 전략은 어느 한쪽 편을 드는 것이 아니라 UNCLOS와 항행의 자유라는 원칙을 일관되게 지지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것을 말로만 할 게 아니라 독도, 서해 NLL(북방한계선), 이어도 수중 암초 같은 우리 자신의 해양 주권 문제에도 실질적인 대응 역량을 갖추는 것으로 증명해야 합니다. 이어도는 우리의 EEZ 내에 위치한 수중 암초이지만, 중국과의 EEZ 경계 획정이 아직 완료되지 않은 상태입니다. 이 문제가 언젠가 남중국해 방식으로 불거지지 않는다고 보장할 수 없습니다.
현재 인도-태평양 지역에서는 군사력 경쟁에 더해 경제, 기술, 공급망 경쟁이 동시에 진행 중입니다. 해양안보(Maritime Security)란 단지 군함을 몇 척 보유하느냐의 문제가 아니라, 국제법 대응 역량, 외교 네트워크, 그리고 공급망 회복력까지 포함하는 복합 개념입니다. 한국 해양수산부와 해군이 실제로 어떤 역량을 쌓고 있는지 궁금하신 분은 대한민국 해군 공식 홈페이지에서 관련 정책을 확인해 보실 수 있습니다.
앞으로도 남중국해에서는 단기간에 해결책이 나올 가능성은 낮아 보입니다. 중국은 이 해역을 핵심 이익으로 규정했고, 필리핀은 국제법과 우방국 연대를 무기로 버티고 있습니다. 양측 모두 쉽게 물러설 수 없는 구조입니다. 이 분쟁을 보면서 한국이 얻어야 할 교훈은 하나입니다. 해양 주권은 선언만으로 지켜지지 않는다는 것, 그리고 국제법을 내 편으로 만드는 일은 분쟁이 터지기 전에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 자주 묻는 질문 (남중국해 해양 분쟁 FAQ)
Q1. 필리핀의 해양구역법 제정에 중국이 반발하는 이유는 무엇인가요?
A. 필리핀이 남중국해 분쟁 수역에 대한 EEZ 범위를 국내법으로 명문화하고 독자적인 지도 출판을 예고함에 따라, 중국은 자국의 영유권 주장(구단선 및 스카버러 암초 권리)에 대한 정면 도전으로 해석하고 맞대응에 나선 것입니다.
Q2. '법률전(Lawfare)'과 '회색지대 전략'이란 무엇인가요?
A. 군사적 전면 충돌을 피하면서 자국 법안 개정, 기준선 발표, 해경 및 해양민병대 배치를 통해 실효 지배를 기정사실화하고 법적 자격을 강화하는 강압 전략을 뜻합니다.
Q3. 남중국해 분쟁이 한국 경제에 왜 중요한가요?
A. 한국이 수입하는 중동산 원유와 LNG 등 핵심 에너지 자원 및 수출입 물동량의 대다수가 남중국해 해상교통로(SLOC)를 지나기 때문에, 이 해역의 안정이 곧 한국 경제의 생명선과 직결됩니다.
⚠️ 안내 및 면책조항 (Disclaimer)
본 글은 공개된 국제 뉴스 및 학술 정보, 국제 법안 발표 자료를 기반으로 작성되었습니다. 본문의 견해와 분석은 34년간 군 복무를 마친 필자의 개인적인 안보·지정학적 통찰이며, 관련 정부 기관이나 국제기구의 공식 입장과는 무관합니다. 또한 전문적인 법률·외교적 자문을 대신할 수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