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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살상 무기 수출 폐지, 한국 방산의 위기인가? 필리핀 호위함 수출의 숨은 전략 분석

by 등대가 있는 언덕 2026. 5. 11.

지난 4월 21일, 일본이 살상 무기 수출 규제를 전면 폐지했습니다. 군 생활을 하면서 방위 전력 구조를 분석해 온 저로서는 솔직히 이건 예상 밖이었습니다. 단순한 방산 정책 변화가 아니라, 중국 견제라는 지정학적 판단이 배경에 있다고 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 첫 번째 무대가 필리핀이었습니다.

아부쿠마급 호위함, 필리핀의 선택은 현명했는가

5월 5일, 일본과 필리핀은 퇴역한 아부쿠마급 호위함의 수출 계약을 체결했습니다. 아부쿠마급은 1989년부터 운용된 만재 배수량 2,550톤급 함정으로, 대잠작전(ASW)에 특화된 설계를 갖추고 있습니다. 여기서 대잠작전이란 수중의 적 잠수함을 탐지하고 격멸하는 임무를 말하며, 남중국해에서 중국 잠수함 위협에 노출된 필리핀 해군에게는 분명 필요한 능력입니다.

제가 직접 분석 자료를 검토하면서 흥미롭게 본 지점은 따로 있었습니다. 필리핀은 이미 우리나라 현대중공업을 통해 신형 함정 12척을 발주했고, 포항급 호위함을 도입하면서 한국형 전투 지휘 체계를 전 함대에 걸쳐 표준화해 왔습니다. 전투 지휘 체계(CMS, Combat Management System)란 함정이 레이더, 무장, 통신 시스템을 통합해 실시간 전술 판단을 내리는 두뇌 역할을 합니다. 필리핀 해군은 호세 리잘급 전투함을 시작으로, 미국이 제공한 해밀턴급 연안 경비함에도 한화시스템의 한국형 CMS를 장착할 만큼 사실상 전투 지휘 시스템을 한국제로 통일한 상태입니다.

그렇다면 아부쿠마급은 어떻게 될까요? 필리핀은 낡은 일본제 전투 지휘 체계를 한국제로 교체해 장기 운용하기를 원하지만, 일본의 폐쇄적인 조직 문화와 기술 통제 방식을 고려하면 이를 허가받기가 쉽지 않을 것입니다. 방산 시장에서 "무기 하나"를 파는 것보다 "체계 전체"를 통합하는 쪽이 훨씬 강력한 잠금 효과(Lock-in effect)를 만들어냅니다. 필리핀이 이미 한국형 CMS 체계 안으로 깊숙이 들어온 이상, 일본이 아사기리급 호위함까지 밀어넣겠다는 구상은 현실성이 높지 않다는 분석이 나오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필리핀 군사 전문가들이 아부쿠마급을 처음이자 마지막 중고함 도입으로 보는 핵심 근거를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 필리핀 해군 전(全) 함대의 전투 지휘 체계가 한국제로 통일되어 있어 일본제 시스템과의 통합 비용이 과도하게 발생
  • 아부쿠마급 이후 일본 수상함은 완전 가스터빈 추진 방식으로, 운용 연료비 부담이 지나치게 큼
  • 필리핀 해군은 2030년대 초 퇴역이 예상되는 우리 광개토대왕급 도입에 더 높은 관심을 보이는 상황

📊 필리핀 해군 도입 함정 비교 요약

구 분 일본 아부쿠마급 (중고) 한국 호세 리잘급 (신조)
주요 임무 대잠작전(ASW) 특화 다목적 연안 작전
추진 방식 가스터빈/디젤 혼합 (고비용) 디젤 엔진 (저비용·고효율)
전투 체계 일본 독자 CMS (폐쇄적) 한국형 CMS (필리핀 표준화)
지속 가능성 노후화 및 부품 수급 불확실 장기적 후속 군수지원 패키지 포함

 

한편 74식 전차와 03식 지대공 미사일 도입 논의도 눈여겨볼 필요가 있습니다. 74식 전차는 전투 중량 38톤으로 연약 지반이 많은 필리핀 환경에 맞는 측면이 있고, 퇴역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예비 부품 수급이 비교적 용이합니다. 그러나 주조 장갑(Cast Armor) 방식은 이슬람 게릴라들이 사용하는 RPG-7 대전차 로켓에 취약합니다. 현대전의 전차는 생존성을 위해 복합 장갑과 반응 장갑(ERA, Explosive Reactive Armor)의 조화가 필수적입니다. 반응 장갑이란 피격 시 폭발로 관통 에너지를 분산시켜 장갑 관통을 막는 부가 방호 장비입니다. 현재 이를 대량 양산하는 서방 국가는 대한민국이 사실상 유일하며, K2 흑표 전차에 탑재되는 ERA가 가장 가격 대비 성능이 우수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운용 경제성과 한국 방산의 실질적 경쟁력

일본이 무기 수출 시장에 본격 진입했다고 해서 한국 방산이 긴장해야 할 이유가 있을까, 라고 물으신다면 저는 "이유는 있지만 과도하게 걱정할 필요는 없다"고 봅니다.

가장 결정적인 약점은 추진 방식에 있습니다. 아사기리급 이후 일본 수상함은 가스터빈(GT, Gas Turbine) 단독 추진 방식을 채택하고 있습니다. 가스터빈이란 항공기 엔진 원리를 활용해 고출력을 내는 방식으로, 빠른 가속과 높은 속도가 장점이지만 디젤 엔진 대비 연료 소모율이 최소 300% 이상 급증합니다.

가스터빈과 디젤 엔진의 부하에 따른 연료 소비율 비교. 가스터빈은 고출력을 내지만, 저속 및 중속 항해 구간에서 디젤 엔진보다 월등히 많은 연료를 소모함을 알 수 있다.

 

전 세계에서 이 방식을 주력 수상함에 사용하는 나라는 미 해군과 일본 해상자위대(JMSDF) 정도입니다. 두 나라 모두 세계 최대 규모의 국방 예산을 바탕으로 운용하는 것입니다.

우리 해군도 세종대왕급 이지스함에 가스터빈을 사용하는데, 광개토대왕급 대비 연료 소모가 다섯 배 이상 늘어나 운용에 부담이 크다는 이야기를 실무 관계자들에게 들은 적이 있습니다. 예산 한계가 명확한 필리핀 해군이 이보다 훨씬 운용비가 높은 아사기리급을 도입할 가능성은 현실적으로 낮습니다. 

여기에 더해 10식 전차 포탄 폭발 사고는 일본 방산의 신뢰성 문제를 다시 수면 위로 끌어올렸습니다. 일본 내부에서도 다이하쓰(Daihatsu) 자동차의 데이터 조작 스캔들에 빗대는 목소리가 나오는 상황입니다. 방산 시장에서 한 번 흔들린 품질 신뢰는 회복하는 데 상당한 시간이 필요합니다.

일본 산케이신문은 자국의 해군 기술력이 한국 방산을 위협할 것이라고 보도했지만, 시프리(SIPRI, Stockholm International Peace Research Institute)의 자료를 보면 현실은 다릅니다. SIPRI는 세계 군비 및 무기 이전 현황을 추적하는 가장 권위 있는 국제 연구기관으로, 한국의 무기 수출 규모는 이미 세계 상위권에 진입해 있습니다(출처: SIPRI). 산케이가 한국을 세계 9위로 낮춰 보도한 것은 근거 없는 왜곡이었습니다.

여기에 더해 10식 전차 포탄 폭발 사고는 일본 방산의 신뢰성 문제를 다시 수면 위로 끌어올렸습니다. 독일 라인메탈의 DM12 다목적 고폭탄을 면허 생산한 JM1A1이 원인으로 지목되고 있는데, 10개국 이상이 DM12를 운용하면서 유사 사고가 없었다는 점에서 일본의 면허 생산 과정에서 품질 관리 문제가 발생했을 가능성이 높다는 분석입니다. 일본 내부에서도 다이하쓰(Daihatsu) 자동차가 35년간 안전성 테스트 데이터를 대규모로 조작했던 이른바 '다이하쓰 스캔들'에 빗대는 목소리가 나오는 상황입니다. 방산 시장에서 한 번 흔들린 품질 신뢰는 회복하는 데 상당한 시간이 필요합니다(출처: 방위사업청).

억제력은 무기 하나로 완성되지 않는다

제가 군에 있을 때 늘 들었던 말이 있습니다. "보급이 끊기면 전투는 끝난다." 지금 한국 방산이 전 세계에서 주목받는 이유도 결국 이 한 문장으로 설명됩니다. 무기 성능뿐 아니라 훈련 지원, 정비 인력 파견, 후속 군수지원까지 패키지로 제공하는 방식이 현재 시장의 흐름과 정확히 맞아떨어지고 있습니다.

앞으로의 방산 경쟁은 "누가 더 정밀한 무기를 만드느냐"보다 "전쟁이 길어져도 끝까지 공급과 정비를 책임질 수 있느냐"의 싸움이 될 것입니다. 일본의 무기 수출 확대를 마냥 위협으로만 볼 필요는 없습니다. 오히려 일본이 개척한 시장에서 우리가 실익을 챙기는 전략적 사고가 지금 우리 방산에 더 필요한 자세라고 생각합니다.


참고: https://www.youtube.com/watch?v=n0l2BWBLw8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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