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과 이란이 2주 휴전에 합의했습니다. 그런데 양측이 동시에 "우리가 이겼다"고 주장하는 상황이 벌어졌습니다. 저는 이 장면을 보고 솔직히 피식했습니다. 두 나라가 모두 승리를 주장한다는 건, 결국 누구도 결정적 승리를 거두지 못했다는 뜻이기 때문입니다.
역사가 반복해 온 약자의 전략
일반적으로 전쟁은 강한 쪽이 이긴다고 알려져 있지만, 제 경험상 이건 절반만 맞는 말입니다. 군 복무 중 작전 환경에서 직접 체감한 건, 초기 충격력과 기동력은 강자가 가져가지만 전쟁이 길어질수록 판도를 바꾸는 변수는 전혀 다른 곳에서 나온다는 점이었습니다.
역사를 보면 이 패턴은 반복됩니다. 기원전 480년 살라미스 해전에서 수적으로 열세였던 그리스 연합군은 페르시아 대함대를 좁은 해협으로 끌어들여 격파했습니다. 압도적 전력 차이를 전장 지형으로 무력화한 사례입니다. 1812년 나폴레옹의 러시아 원정은 더 극적입니다. 당시 유럽 최강이었던 프랑스군은 러시아의 초토화 전략(scorched-earth strategy) 앞에 무너졌습니다. 초토화 전략이란 후퇴하면서 도로, 식량, 마을 등 모든 자원을 파괴해 적군의 보급선을 끊는 전술입니다. 나폴레옹은 결국 병력 대부분을 잃고 철수했고, 이것이 그의 몰락을 촉발했습니다.
베트남 전쟁과 소련-아프가니스탄 전쟁은 현대판 교과서입니다. 군 교리 교육에서 비대칭 전력(asymmetric warfare)은 거의 모든 장기전 시나리오에서 핵심 개념으로 다뤄집니다. 비대칭 전력이란 전통적인 정규전 대신 약자가 자신의 강점을 극대화하는 방식으로 전력 차이를 상쇄하는 전략 개념입니다. 베트콩은 이 방식으로 세계 최강 미군을 수렁에 빠뜨렸고, 무자헤딘은 휴대용 대공미사일 하나로 소련 공군의 제공권 우위를 무너뜨렸습니다.
이란의 전략도 같은 맥락에서 읽힙니다. 이란이 이번 전쟁에서 구사한 핵심 전략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 비용 비대칭화: 상대적으로 저렴한 드론과 미사일로 미국의 고비용 방어 체계를 소모시키는 방식
- 전장 확장: 홍해, 에너지 인프라 등으로 전선을 분산시켜 미국의 대응 효율을 낮추는 전략
- 시간의 무기화: 긴장과 충돌을 반복하며 트럼프 대통령의 정치적 비용을 누적시키는 접근
훈련 중 장기 소모전 시나리오를 반복했던 제 입장에서 보면, 이 세 가지는 교과서에서 그대로 나온 전술입니다. 특히 해상로 위협이 게릴라식 지상 타격과 결합되면 전선이 급격히 확산되면서 강군일수록 유지 비용과 피로도가 기하급수적으로 올라갑니다. 이건 이론이 아니라 제가 작전 환경에서 직접 느낀 현실입니다.
전쟁 억제력 연구를 전문으로 하는 국제전략연구소(IISS)에 따르면, 비대칭 전쟁에서 강대국이 군사적 우위를 유지하더라도 정치적·경제적 소모를 견디지 못해 철수하는 사례가 20세기 이후 반복적으로 확인됩니다(출처: 국제전략연구소(IISS)). 트럼프 대통령이 전면공격 시한 90분을 앞두고 2주 휴전을 전격 선언한 배경에는 이 구조적 압박이 작용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의지만으로는 부족한 이유, 소모전의 실제 조건
'약자가 버티면 이긴다'는 말은 맞지만, 저는 이 명제를 그대로 받아들이기가 어렵습니다. 의지만으로 전쟁이 결판난다는 시각은 낭만적이지만 실제와 거리가 있기 때문입니다.
소모전(war of attrition)은 단순히 오래 버티는 싸움이 아닙니다. 소모전이란 상대방의 전투력과 자원을 지속적으로 고갈시켜 전쟁 지속 의지를 꺾는 전략 형태입니다. 이 전략이 실제 효과를 발휘하려면 경제적 지속 능력, 외교적 지원망, 그리고 국내 정치 결집력이 함께 받쳐줘야 합니다. 베트남이 미국을 이긴 건 의지만이 아니었습니다. 소련과 중국의 물자 지원, 남북 간 보급로인 호치민 루트, 그리고 미국 내 반전 여론이 맞물린 결과였습니다.
이란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솔직히 이건 예상 밖이었습니다. 이란이 강력한 경제 제재 속에서도 이 정도 전략적 지구력을 유지했다는 사실은, 이란이 단순히 버텼다기보다 전쟁의 비용 구조 자체를 교란하는 데 성공했다는 의미로 읽힙니다.
핵심은 전술적 억제력(tactical deterrence)에 있습니다. 전술적 억제력이란 상대가 군사 행동을 취할 때 치러야 할 비용을 높여 결정을 주저하게 만드는 능력입니다. 이란은 이 능력을 후티 반군 등 대리 세력(proxy forces)을 활용해 구현했습니다. 대리 세력이란 직접 개입하지 않고 제3의 무장 세력을 통해 전략 목표를 달성하는 방식입니다. 이 방식은 이란 본토에 대한 직접 보복의 명분을 희석시키면서 동시에 미국의 대응 비용을 분산시킵니다.
미국 랜드연구소(RAND Corporation)의 중동 분쟁 분석에서도 이란의 대리전 전략이 역내 강대국 개입 비용을 실질적으로 높이는 효과를 낸다고 분석한 바 있습니다(출처: 랜드연구소(RAND)). 제가 훈련에서 반복적으로 체험한 것도 이와 같습니다. 전선이 하나일 때와 셋으로 분산됐을 때, 같은 병력으로도 대응 효율은 완전히 달라집니다.
결국 이번 이란 전쟁이 던지는 질문은 단순합니다. 미국이 군사적으로 압도했는가? 아마 그렇습니다. 그러나 전쟁의 정치적 목표를 달성했는가? 이건 아직 답이 나오지 않았습니다. 전술적 우위와 전략적 승리는 다른 문제입니다.
이번 휴전의 결과가 어떻게 정리되든, 한 가지는 분명합니다. 전쟁의 결말은 화력 우위가 아니라 상대의 비용을 초과시키는 구조를 먼저 설계한 쪽이 씁니다. 그 구조를 먼저 무너뜨리는 쪽이 최종 승자가 됩니다. 앞으로 2주 간의 휴전 협상 결과를 주의 깊게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이란이 실질적인 외교적 양보를 얻어내느냐 여부가 이번 전쟁의 진짜 성적표가 될 것입니다.
참고: https://n.news.naver.com/mnews/article/029/0003020906?sid=1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