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맹이 강할수록 서로가 필요 없어야 한다는 말, 혹시 들어보셨습니까? 군 복무 시절 한미연합훈련에 참여하면서 저는 그 역설을 뼈저리게 실감했습니다. 그런데 지금 유럽이 정확히 그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습니다. 멜로니가 이스라엘과의 방위 협정 연장을 거부했고, 유럽은 미국 없이 호르무즈 해협을 직접 열겠다고 나섰습니다.
호르무즈에서 감지된 나토 균열
저는 한미연합훈련에 직간접적으로 참여하면서 해상작전의 본질을 한 가지 배웠습니다. 전투력은 함정 숫자가 아니라 지휘 구조에서 나온다는 것입니다. 그때 느낀 건, 다국적 연합이 늘어날수록 정치적 승인 절차가 복잡해지고 즉응성이 눈에 띄게 떨어진다는 사실이었습니다.
호르무즈 해협은 전 세계 석유 물동량의 약 20%가 통과하는 초크포인트(choke point)입니다. 초크포인트란 해상 교통로에서 병목 구간처럼 좁아지는 전략적 요충지를 의미하는데, 이 지점이 봉쇄되면 에너지 공급망 전체가 흔들립니다. 지금 유럽이 이 해협의 기뢰 제거와 항행 자유 보장을 위해 독자적인 다국적 연합을 구성하려는 것은 단순한 군사 행동이 아니라 정치적 선언에 가깝습니다.
월스트리트 저널 보도에 따르면, 유럽은 미국·이스라엘·이란을 모두 배제한 연합 함대를 호르무즈에 파견하는 방안을 검토 중입니다. 프랑스와 영국이 공동 주최하는 국제회의에는 최대 40여 개국이 참여할 가능성이 있으며, 2차 세계대전 이후 군사 개입에 극도로 소극적이었던 독일도 참여 가능성이 커졌습니다.
유럽 내 이견도 있습니다. 현재 논의에서 크게 갈리는 지점은 다음과 같습니다.
- 프랑스: 미국이 작전에 참여하면 이란을 자극할 수 있다며 배제 입장
- 영국: 미국 없이 진행 시 트럼프의 반발과 작전 능력 한계를 우려
- 독일: 전통적 군사 개입 자제 원칙을 넘어 참여 쪽으로 무게 이동 중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럽이 이 방향으로 속도를 내는 건, 미국에 대한 불신이 더 이상 외교적 수사가 아니라 실제 정책 결정에 반영되기 시작했다는 신호입니다.
멜로니의 선택과 나토 균열의 실체
트럼프 대통령과 가장 가깝다고 평가받던 유럽 지도자가 조르자 멜로니 이탈리아 총리였습니다. 그 멜로니가 20년간 이어온 이스라엘과의 방위 협정 연장을 거부했습니다. 제가 이 뉴스를 처음 봤을 때 솔직히 예상 밖이었습니다. 유럽 우파 동맹의 핵심이 이 시점에 이런 결정을 내린다는 건 단순한 외교적 불만이 아닌 구조적 변화의 신호로 읽혔기 때문입니다.
멜로니 총리는 중동 전쟁에 반대하는 교황을 트럼프가 비판하자 공개적으로 교황을 옹호했습니다. 트럼프는 즉각 "받아들일 수 없다"고 맞받아쳤고, 이 충돌은 두 사람의 관계가 이미 임계점을 넘었음을 보여줬습니다.
나토 내부의 균열은 오래전부터 예고된 일이었습니다. 트럼프 2기 출범 직후부터 나토 탈퇴 위협과 방위비 압박이 반복됐고, 여기에 이란 전쟁 국면에서 유럽에 대한 참전 요구까지 더해지며 불만이 폭발한 것입니다. 나토(NATO)란 북대서양 조약기구(North Atlantic Treaty Organization)의 약자로, 집단 방위 원칙에 따라 회원국 중 하나가 공격받으면 전체가 응전하는 집단 안보 동맹입니다. 그런데 지금은 그 동맹의 리더가 동맹국을 조롱하고 압박하는 구조가 됐습니다.
유럽 국가들이 가장 불안해하는 건 단순히 트럼프 개인이 아닙니다. ISR(Intelligence, Surveillance, Reconnaissance), 즉 정찰·감시·첩보 수집 능력, 위성 네트워크, 미사일 경보 체계, 핵우산 등 나토 작전의 핵심 인프라가 사실상 미국 독점 체제로 운영돼 왔다는 점입니다. 미국이 실질적으로 빠지면 유럽은 동일한 전력을 보유하더라도 이 체계를 단기간에 대체하기 어렵습니다. 제 경험상 이건 연합훈련 상황에서도 명확히 드러났습니다. 지휘 일원화가 깨진 다국적 연합은 같은 무기를 가지고도 전혀 다른 결과를 냈으니까요.
나토 방위비 지출과 관련하여 유럽 회원국들은 GDP 대비 2% 이상 방위비 지출 목표를 지속적으로 논의해 왔습니다(출처: NATO 공식 홈페이지).
독자 안보 노선, 가능한가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은 트럼프 대통령과 이란 로하니 대통령 양측에 협상 재개를 촉구하며 중재를 시도하고 있습니다. 동시에 영국과 공동으로 호르무즈 안보 국제회의를 주최합니다. 제 경험에서 얻은 결론을 여기에 대입해 보면, 이 구상이 작동하려면 결국 '누가 지휘하느냐'의 문제를 먼저 해결해야 합니다.
유럽 독자 안보 노선의 현실적 한계를 정리하면 이렇습니다.
- 위성·장거리 정밀타격·미사일 경보 등 핵심 전략 자산의 미국 의존도가 여전히 높습니다.
- 다국적 연합 특성상 교전 규칙(ROE, Rules of Engagement) 합의와 정치적 승인 절차에 시간이 걸립니다. ROE란 각국 군대가 언제, 어떤 조건에서 무력을 사용할 수 있는지 규정한 지침으로, 연합작전에서 가장 먼저 충돌하는 지점 중 하나입니다.
- 독일의 참여 가능성은 커졌지만, 독일 기본법상 해외 군사작전에 대한 국내 정치적 제약이 아직 남아 있습니다.
그렇다고 이 움직임을 과소평가해서는 안 됩니다. 트럼프의 압박이 역설적으로 유럽의 방위 독립을 앞당긴 측면이 있습니다. 유럽연합(EU) 집행위원회는 2024년 유럽 방위 산업 강화 계획(EDIP)을 발표하며 역내 방산 협력을 제도화하기 시작했습니다(출처: 유럽연합 집행위원회).
지금의 유럽은 '탈미국'을 선언한 게 아닙니다. 미국 의존도를 줄이면서도 완전한 분리 없이 균형을 찾는 과도기적 조정 단계에 있다고 보는 것이 정확합니다. 호르무즈 회의가 단순한 외교 이벤트로 끝날지, 아니면 '미국 없는 유럽 안보'가 실체화되는 첫 장면이 될지는 앞으로 수개월 안에 판가름 날 것입니다.
지금 이 흐름이 한국에도 남의 이야기가 아닌 이유는 나토 사무총장이 직접 한국과 일본도 호르무즈 해협 개방에 협력해야 한다고 언급했기 때문입니다. 한반도 안보 역시 미국 일변도의 구조에서 얼마나 자율성을 갖출 수 있느냐가 앞으로의 핵심 과제가 될 것입니다. 유럽의 실험을 눈여겨봐야 하는 이유가 여기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