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당 9발. K9MH가 공개 실사격에서 기록한 발사 속도입니다. 저는 이 수치를 처음 봤을 때 솔직히 반신반의했습니다. 트럭 기반 차륜형 자주포가 그 속도를 낸다는 게 훈련 현장에서 몸으로 익힌 감각과 잘 맞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영상을 직접 보고 나서 생각이 바뀌었습니다. 이건 단순한 무기 업그레이드가 아니라, 전장 환경이 요구하는 방식으로의 진화였습니다.
SPHM 사업과 K9MH의 등장 배경
미 육군은 2024년 8월, SPHM(Self-Propelled Howitzer Modernization) 프로그램의 정보 요청서(RFI)를 발표했습니다. SPHM이란 노후화된 M109 팔라딘 계열 자주포를 대체하기 위한 미 육군의 자주포 현대화 획득 사업으로, 궤도형과 차륜형 사업을 병행하다 결국 차륜형으로 방향을 통합한 프로그램입니다. 여기서 차륜형 자주포란 궤도(캐터필러) 대신 일반 바퀴를 사용하는 트럭 또는 장갑차 기반의 자주포를 의미하며, 도로 기동성과 전략적 수송 편의성이 강점입니다.
한화에어로스페이스는 같은 해 10월 공식 참여 요청을 받았고, K9MH 실물 사진과 실사격 영상을 공개하며 사업에 뛰어들었습니다. 경쟁자는 만만치 않습니다. 독일 라인메탈의 RCH155, 제너럴 다이내믹스와 KNDS가 손잡은 피라냐 기반 모델, BAE 시스템즈의 아처, 이스라엘 엘빗 시스템즈의 시그마까지, 서방 자주포 시장의 주요 플레이어가 모두 모였습니다.
제가 직접 훈련에서 겪어보니, Shoot & Scoot 개념은 말처럼 간단하지 않습니다. Shoot & Scoot란 적의 대포병 레이더에 탐지되기 전에 사격 직후 즉시 진지를 이탈하는 전술로, 자주포의 생존성을 좌우하는 핵심 교리입니다. 이 전술을 제대로 쓰려면 발사 속도만큼이나 이동 준비 시간과 차량의 출력이 함께 받쳐줘야 합니다. K9MH가 타트라(TATRA) 트럭을 기반으로 개발된 것도 그 이유와 무관하지 않습니다. UAE와 사우디의 표준 군용 트럭으로 이미 운용 중인 체코 타트라제 차량을 플랫폼으로 삼았기 때문에, 정비 인프라와 부품 수급 체계가 이미 갖춰진 상태에서 출발할 수 있습니다.
경쟁 모델들의 핵심 비교 포인트를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 RCH155 (라인메탈): AGM 포탑 탑재, 복서 차륜 장갑차 기반, 이동 간 사격 기능 홍보, 조달 단가 높음
- 피라냐 기반형 (제너럴 다이내믹스-KNDS): 동일한 AGM 포탑, 피라냐 장갑차 기반, 야지 기동력 우수
- K9MH (한화에어로스페이스): 타트라 트럭 기반, 분당 9발 발사, 탄약 적재량 40발로 경쟁 대비 10발 많음
- 아처 (BAE-보포스): 채용 사례 적고 영국군마저 RCH155로 선회하며 입지 축소
- 시그마 (엘빗 시스템즈): 중동 국가들의 이스라엘 무기 도입 거부감으로 현실적 진입 어려움
중동 시장이 진짜 목표인 이유
SPHM 수주 가능성에 대해 솔직히 말씀드리면, 저는 낙관적으로 보지 않습니다. 미군 조달 체계는 단순한 성능 비교로 결정되지 않습니다. 기존 방산 산업 기반, 동맹 기업 구조, 정치적 고려가 복합적으로 작용하는 게 미국 무기 조달의 현실입니다. 특히 AGM 포탑은 PZH 2000 기반으로 오랜 기간 사격 테스트를 거쳐 신뢰성 면에서 높은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PZH 2000이란 독일 KNDS가 개발한 155mm 궤도형 자주포로, 우크라이나 전선에도 투입되며 실전 데이터를 축적한 플랫폼입니다. AGM은 그 포탑 기술을 차륜형에 이식한 모듈입니다.
그럼에도 한화에어로스페이스가 SPHM에 참여하는 건 수주보다 학습이 목적이라고 보는 시각이 있는데, 저도 그 분석에 동의합니다. 미군의 복잡한 시험평가 절차와 요구 사항을 직접 경험하는 것 자체가 다음 세대 수출 사업을 위한 핵심 자산이 됩니다.
진짜 무대는 중동입니다. 사우디아라비아는 현재 프랑스제 케사르(Caesar) 차륜형 자주포를 80~100여 대 운용 중입니다. 케사르란 넥스터(현 KNDS France)가 개발한 6×6 트럭 기반 155mm 자주포로, 프랑스군 표준 장비이자 세계 10여 개국에 수출된 모델입니다. 그런데 사우디가 새 차륜형 자주포를 다시 원하는 배경에는 예멘 내전 이후 달라진 안보 환경이 있습니다. 후티 반군이 예멘 수도를 장악하면서 사우디 남부 국경에 이란의 지원을 받는 시아파 세력이 사실상 자리 잡은 셈이 됐고, 광대한 국경선을 신속하게 커버할 고기동 화력이 절실해졌습니다.
케사르의 한계도 이 맥락에서 드러납니다. 수동 장전 방식에 포 운용 인원이 외부에 노출되는 구조는 적의 드론과 정밀 화력이 난무하는 현대 전장에서 생존성 문제를 야기합니다. 제가 포병 훈련을 직접 겪어보니, 장전 인원이 외부에 있을 때 얼마나 취약한지 뼈저리게 느꼈습니다. 반자동 또는 자동 장전 시스템은 선택이 아니라 생존의 문제입니다.
K9MH는 이 빈자리를 공략합니다. 타트라 트럭 기반으로 사우디의 기존 정비 인프라를 그대로 활용할 수 있고, 탄약 적재량 40발은 경쟁 모델 대비 10발 많아 화력 지속성에서 우위를 가집니다. 2024 KADEX(카덱스) 방산전시회에서 공개된 모형이 천무 다연장 로켓 차량 기반에서 타트라 트럭 기반으로 변경된 것도, 사우디 시장을 겨냥한 현실적 판단의 결과입니다(출처: KADEX 2024 공식 홈페이지). 실제로 2026년 초부터 진행 중인 사우디 현지 기동 테스트에서 K9MH는 고온 다습한 환경 속에서도 궤도형에 육박하는 사격 안정성을 보여주며 현지 군 관계자들의 긍정적인 반응을 이끌어내고 있습니다.
생존성 중심으로 바뀐 포병 운용 개념
우크라이나 전쟁은 포병 운용의 패러다임을 바꿔놓았습니다. 제가 직접 경험한 훈련에서도 느꼈지만, 포병 전력의 핵심은 사거리나 위력만이 아닙니다. 얼마나 오래 버티며 다시 쏠 수 있느냐가 진짜 전투력입니다. 복잡한 정비를 요구하는 고성능 무기보다, 망가져도 빠르게 복구해 다시 굴러가는 무기가 전선에서 살아남습니다. 우크라이나에서 K9 기반의 클랩(K9 VIDAR의 노르웨이 공여 버전)이 PZH 2000보다 안정적인 운용 기록을 남긴 것도 같은 맥락입니다.
대포병 레이더(Counter-Battery Radar)의 진화도 중요한 변수입니다. 대포병 레이더란 포탄의 궤적을 역추적해 발사 위치를 수초 내에 탐지하는 시스템으로, 현대 전장에서 자주포가 한 곳에 머무는 시간을 극단적으로 단축시켰습니다. 이 환경에서 Shoot & Scoot의 속도는 생존과 직결됩니다. K9MH의 분당 9발 발사 속도와 빠른 도로 기동력은 이 요구에 정확히 맞춰진 설계입니다.
라인메탈 RCH155가 홍보하는 '저속 이동 간 폭격 능력'은 기술적으로 인상적이지만, 아직 실전 검증 데이터가 부족합니다. K9MH 역시 실전 기록이 없다는 점은 동일합니다. 결국 관건은 누가 먼저 실전에서 검증된 기록을 쌓느냐입니다. 이 점에서 K9의 누적 수출 실적과 운용 데이터가 K9MH에 간접적인 신뢰 자산이 됩니다. 2024년 기준 K9 자주포는 폴란드, 호주, 이집트, 노르웨이, 핀란드 등 10개국 이상에 수출되며 서방 궤도형 자주포 시장 점유율 1위를 기록 중입니다(출처: 한화에어로스페이스 공식 사이트).
차륜형과 궤도형은 경쟁 관계가 아닙니다. 에스토니아는 K9 궤도형과 케사르 차륜형을 함께 운용하고, 독일도 PZH 2000에 더해 RCH155 도입을 진행 중입니다. 지형과 운용 목적에 따라 두 플랫폼은 상호 보완적입니다. 노르웨이가 설상 기동성 문제로 아처를 포기하고 K9을 선택한 것처럼, 사우디가 광활한 국경을 빠르게 커버해야 하는 환경에서 차륜형을 원하는 건 당연한 선택입니다.
결국 K9MH가 보여주는 건 무기 하나의 성능이 아니라, 시장과 전장의 변화를 읽고 준비해 온 속도입니다. 저는 이 무기가 미국 사업에서 이기지 못하더라도, 중동과 유럽의 가격 민감 시장에서 충분한 게임 체인저가 될 가능성이 높다고 봅니다. 가격, 납기, 운용 단순성이라는 세 가지를 동시에 갖춘 차륜형 자주포는 지금 시장에서 사실상 K9MH가 유일하기 때문입니다. 완성도가 검증되는 순간, 수주는 따라올 것입니다.( 참고: 중고 K9 자주포의 핀란드 도입폴란드 수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