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를 보다가 문득 과거 현역 시절 전쟁연습 훈련이 떠오르는 순간이 있었습니다. 저는 과거 군 생활을 하면서 협상과 군사 행동이 동시에 맞물려 돌아가는 상황을 수도 없이 훈련으로 겪었는데, 지금 미국과 이란 사이에서 벌어지는 일들이 그 장면들과 너무 닮아 있다고 느꼈습니다. 2차 종전 회담이 무산되고, 호르무즈 해협에서의 긴장이 다시 치솟는 지금, 이건 단순한 외교 실패가 아닐 수도 있습니다.
강압적 협상 구조: 협상 테이블 밖에서 벌어지는 진짜 싸움
파키스탄이 중재국으로 나서 이슬라마바드에 회담 장소까지 마련했지만, 이란은 2차 협상에 끝내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습니다. 그러면서도 주 파키스탄 이란 대사는 샤리프 총리를 직접 만나 향후 일정을 논의했습니다. 불참하면서도 채널은 끊지 않는 것, 저는 이게 굉장히 계산된 행동이라고 봅니다.
이 구도는 전형적인 강압적 협상(Coercive Diplomacy) 구조입니다. 강압적 협상이란 군사·경제적 압박을 수단으로 삼아 상대방이 먼저 양보하도록 유도하는 외교 전략을 말합니다. 군에서도 "전투는 협상을 유리하게 만들기 위한 수단"이라는 말을 자주 사용하고는 하는데, 지금 상황이 딱 그렇다고 봅니다. 미국의 해상 봉쇄가 압박 카드고, 이란의 해협 통제가 맞불 카드인 셈입니다.
미국은 이란 원유를 실은 티파니호를 인도양 공해상에서 나포했고, 이란 혁명수비대(IRGC)는 허가 없이 호르무즈 해협을 통과한 선박 세 척을 나포하였습니다. 여기서 IRGC란 이란 최고지도자 직속 군사조직으로, 이란 정규군과는 별도로 움직이며 강경 노선을 주도하는 핵심 세력입니다. 이 두 사건은 뉴스에서 따로따로 보도되었지만, 실제로는 같은 판 위에서 맞물린 대응이라 봅니다.
제 경험으로 미루어 볼 때, 훈련에서 한쪽이 압박을 멈추면 협상력이 눈에 띄게 약해졌습니다. 반대로 압박이 강해질수록 대화 자체가 어려워지는 역설적인 상황이 반복됐습니다. 그 딜레마가 지금 미국과 이란 사이에서 고스란히 재현되고 있다고 봅니다.
현재 국면의 핵심 변수를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 고농축 우라늄(HEU) 처리 문제: 핵 협상의 핵심 쟁점으로, 양측 입장 차이가 가장 큰 사안
- 미국의 해상 봉쇄 지속 여부: 이란이 완전한 휴전의 전제 조건으로 강력히 요구
- 기뢰(해저 폭발물) 설치 가능성: 워싱턴 포스트는 미 국방부 고위 당국자의 말을 인용해 호르무즈 해협에 20개 이상의 기뢰가 설치됐을 가능성이 있으며 제거에만 6개월 이상 소요될 것이라고 보도
- 이란 내부의 분열: 트럼프 대통령은 이란 정부가 통일된 입장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고 직접 언급
국제유가의 기준인 브렌트유(Brent Crude)는 일주일 만에 배럴당 100달러를 다시 넘어섰습니다. 브렌트유란 북해산 원유 가격을 기준으로 국제 시장에서 원유 거래 가격을 산정하는 기준 지표로, 이 수치가 오른다는 것은 에너지를 수입하는 거의 모든 나라의 물가와 경제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의미입니다. 중동의 긴장이 한국 주유소 가격과 연결되는 경로가 바로 이 지점입니다(출처: 미국 에너지정보청(EIA)).
호르무즈 해협: 석유 길목에서 인터넷 길목으로 전선이 확장된다
호르무즈 해협(Strait of Hormuz)은 하루 전 세계 원유 물동량의 약 20%가 통과하는 전략적 요충지입니다. 그런데 이번에 이란 혁명수비대와 연계된 강경 매체가 새롭게 꺼낸 카드는 원유나 가스 경로가 아니었습니다. 바로 해협 아래를 지나는 해저 통신 케이블이었습니다.
솔직히 이건 예상 밖이었습니다. 해저 케이블(Submarine Cable)은 전 세계 인터넷 트래픽의 약 95% 이상을 전송하는 핵심 인프라입니다. 여기서 해저 케이블이란 바다 밑에 깔린 광섬유 케이블로, 대륙 간 데이터와 통신을 연결하는 물리적 기반을 말합니다. 이 케이블이 파괴되면 원유 공급 차질과는 비교도 안 될 규모의 글로벌 통신 마비 사태가 올 수 있습니다. 단순한 군사 충돌이 아니라 경제 인프라 전체를 흔드는 시나리오입니다.
이 상황에서 이란 측 협상 대표를 맡았던 갈리바프 의장 측은 "해상 봉쇄는 폭격과 다를 바 없다"며 군사 대응 가능성까지 거론했습니다. 갈리바프 의장은 "해상 봉쇄가 중단될 때만 완전한 휴전이 의미 있다"고 못 박았고, 테헤란 도심에서는 탄도 미사일을 앞세운 대규모 반미 집회가 열리기도 했습니다.
전략적 지연: 미국과 이란의 내부 속셈법
이란 대사가 중재국 파키스탄 총리를 직접 만났다는 사실은 채널이 완전히 닫히지 않았다는 신호로 보입니다. 제 경험상 이런 구조는 양측이 모두 합의 자체를 원하지 않는 게 아니라, 더 유리한 조건을 받아내기 위해 의도적으로 결론을 늦추는 전략적 지연(Strategic Delay)에 가깝다고 봅니다. 전략적 지연이란 협상 결렬을 선언하지 않은 채 압박을 지속하면서 상대의 내부 균열이나 피로감이 쌓이기를 기다리는 전술입니다.
이란이 고농축 우라늄 처리 문제에서 한 발도 물러서지 않는 것, 그리고 미국이 봉쇄 완화 없이 휴전을 무기한 연장한다고 선언한 것, 이 두 가지는 모두 같은 논리 위에 있습니다. 서로 먼저 손을 내밀면 진다는 인식이 양측 내부에 강하게 깔려 있기 때문입니다.
국제에너지기구(IEA)는 호르무즈 해협 폐쇄가 현실화될 경우 단기간 내 브렌트유 가격이 배럴당 150달러를 넘어설 가능성이 있다고 경고한 바 있습니다(출처: 국제에너지기구(IEA)). 산유국과 수입국을 가리지 않고 충격이 오는 상황에서, 미국이 호르무즈 봉쇄를 효과적이라고 자평하면서도 협상의 문을 닫지 않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결국 지금 국면에서 진짜 변수는 협상 내용 자체보다 타이밍에 있다고 봅니다. 양측 내부에서 "이제 타협이 더 이익"이라는 계산이 나오는 시점이 언제냐가 문제인 것입니다. 제 경험상 그 계산은 외부의 중재보다 각자의 내부 정치와 경제 상황이 결정하는 경우가 훨씬 많았습니다. 파키스탄이 불씨를 살리겠다는 의지를 보이고 있지만, 정작 불을 지필 수 있는 건 워싱턴과 테헤란 각자의 내부 셈법입니다. 독자 여러분도 이 상황을 단순한 외교 분쟁이 아닌, 협상과 압박이 동시에 작동하는 복합 구조로 읽어보시기를 권합니다. 언론 보도에서 군사 행동과 협상 소식이 함께 나올 때, 두 가지가 별개가 아니라 하나의 게임판이라는 시각으로 보면 흐름이 훨씬 잘 이해되고 잘 보이게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