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유소에서 리터당 2,000원이 넘는 숫자를 마주한 순간, 잠깐 멍해졌습니다.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1,600원대였는데, 이란과의 전쟁이 장기화되면서 호르무즈 해협 봉쇄 우려가 커지고 유가가 급등한 탓입니다. 저도 뉴스를 보면서 "실제로 저 해협이 그렇게 위험한 건가?" 하는 의문이 들었고, 군 복무 시절 해상 교통로 보호 훈련에서 겪었던 기억들이 자연스럽게 떠올랐습니다.
호르무즈 해협, 지금 실제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나
이란 혁명수비대(IRGC)가 민간 컨테이너선 두 척을 나포하는 사건이 실제로 발생했습니다. 여기서 IRGC란 이란의 정규군과 별도로 운영되는 혁명 이념 수호 부대로, 호르무즈 해협 인근 해상 작전에서 가장 직접적인 위협 주체입니다. 나포된 선박은 스위스와 그리스 국적이었고, 미 해군 봉쇄선 바로 코앞에서 일이 벌어졌다는 점이 많은 이들의 의문을 샀습니다.
영국 해운 무역 기구의 경보에 따르면, IRGC 무장 보트가 사전 교신 없이 민간 화물선 선교(브리지, 선박의 조타 및 항법 지휘 공간)에 총격을 가해 손상을 입혔다고 합니다. 다행히 승무원들은 무사했습니다만, 이 사건은 위협이 단순한 과장이 아님을 보여주는 실례입니다.
반면 같은 시기에 47척의 선박이 호르무즈 해협을 통과했고, 그중 20척은 오만 해안선을 따라 아무 피해 없이 빠져나왔습니다(출처: 미국 해양안보청(MARAD)). 독일 국적 호화 유람선을 포함한 대형 선박들도 그 항로를 이용했습니다. 이 사실만 놓고 보면 "오만 쪽 경로는 안전하다"는 주장이 설득력 있어 보이기도 합니다. 제가 직접 겪어봤던 훈련 상황들을 떠올려보면, 그 결론에 바로 동의하기가 어렵습니다.
낙관론의 근거와 그 이면, 군사 전략 관점에서 따져보면
호르무즈 해협의 위험이 과장되었다는 주장의 근거들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 오만 인근의 깊은 수심 때문에 계류 기뢰 또는 침저 기뢰 부설이 사실상 불가능하다
- 이중 선체 구조를 가진 대형 화물선은 RPG-7(로켓 추진 유탄) 공격에도 쉽게 손상되지 않는다
- 전자전 재밍으로 이란의 자폭 드론을 무력화할 수 있다
- 35km/h 이상의 속도로 항진하면 소형 고속정이 접근하기 어렵다
위에서 제시한 내용을 면밀히 살펴보면, 먼저 오만 쪽 수심이 깊어 기뢰 부설이 어렵다는 논리는 맞지만, '소형 고속정'과 '지대함 미사일'의 사거리 내에는 여전히 포함되기에 위협은 존재하다고 봐야 합니다. 대형 화물선은 RPG-7(로켓 추진 유탄) 공격에 견딜 수 있다는 것 또한 쉽게 판단해서는 위험합니다. 여기서 RPG-7이란 구소련에서 개발된 어깨에 메고 쏘는 대전차 로켓으로, 이란 비정규 전력이 실제로 보유하고 있는 무기입니다. 이중 선체 사이의 빈 공간이 메탈 제트를 확산시킨다는 분석 자체는 맞습니다. 그런데 제 경험상 이건 좀 다르게 봐야 합니다. 선체는 견뎌도 추진 프로펠러나 키(Rudder)가 손상되면 선박은 표류하게 되고, 이는 더 큰 나포 위협으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훈련 중에 특정 항로가 상대적으로 안전하다고 판단되면, 적이 그 사실을 파악하는 순간 바로 위험 축으로 바뀌는 상황을 수차례 봤습니다. '통과 가능'과 '안전 보장'은 엄연히 다른 개념인데, 그 둘을 혼동하는 순간 판단이 흔들립니다. 47척이 무사히 통과한 하루가 있었다고 해서 다음 날도 동일한 조건이 유지된다는 보장은 없습니다.
전자전 재밍(EW Jamming)에 대해서도 솔직히 이건 예상 밖의 맹점이 있습니다. 여기서 EW Jamming이란 적의 전파·통신·유도 신호를 방해해 드론이나 미사일이 표적을 찾지 못하게 하는 전자전 기법입니다. 한국 해군의 소나타(SONATA) 전자전 시스템이 이 역할을 담당합니다. 문제는 이란 드론의 자율 항법(GPS 없이 미리 입력된 경로로 비행) 수준이 높아질수록 재밍 효과가 급격히 줄어든다는 점입니다. 최근 드론들은 GPS 신호가 끊기더라도 사전에 입력된 지형이나 관성 데이터만으로 목표를 타격할 수 있어, 단순 전파 방해만으로는 대응에 한계가 있다는 것입니다. 제가 관련 훈련에서 직접 겪어본 결과, 통신 환경과 적의 기술 수준에 따라 재밍 효과는 천차만별이었습니다. 재밍을 '만능 방어막'처럼 전제하는 건 위험한 단순화입니다.
유가와 민생, 정책 판단은 낙관이 아닌 최악의 시나리오 위에서
유가 급등의 직접적 원인은 호르무즈 해협을 통한 원유 운송 차질 우려입니다. 호르무즈 해협은 전 세계 물동량의 20%, 한국의 경우 원유 수입의 약 70~80% 이상이 이 해협을 통과하는 전략적 병목 구간입니다(출처: 미국 에너지정보청(EIA)). 이 해협이 실질적으로 봉쇄되거나 통항 비용이 급등하면, 유가 상승은 국내 소비자 물가 전반에 파급됩니다. 리터당 2,000원이 단순한 숫자가 아닌 이유입니다.
제가 훈련에서 배운 가장 중요한 원칙 중 하나는 "위협은 과소평가보다 과대평가가 낫다"는 것이었습니다. 비정규 전력, 즉 소형 고속정·드론·기뢰는 '결정적 타격'보다 '불확실성 확대'로 효과를 냅니다. 단 한 번의 사건으로도 운임과 보험료가 폭등하고, 그게 곧 유가로 이어지는 구조입니다. 해상 교통로(SLOC, Sea Lines of Communication)란 원유·원자재·물류가 이동하는 바다 위의 핵심 동맥으로, 이 경로 하나가 막히면 국가 경제 전체가 흔들릴 수 있습니다.
낙관적 분석이 틀렸다는 말이 아닙니다. 오만 항로의 상대적 안전성, 이중 선체의 방어력, 청해부대의 호위 역량은 모두 실질적인 근거가 있습니다. 다만 저는 그 근거들이 "충분히 안전하다"는 결론으로 직행하는 것에는 동의하기 어렵습니다. 실제 해상은 지형이 아니라 환경이 전장을 지배하고, 시계, 파고, 통신 상태가 조금만 달라져도 동일한 위협이 전혀 다른 결과를 만들어냅니다.
정부가 호르무즈 해협 통항을 결정한다면, 그 판단의 기준은 "오늘 통과한 선박이 무사했다"가 아니라 "최악의 상황에서도 대응 가능한가"여야 합니다. 민생과 경제 안정이 목표라면, 낙관이 아닌 철저한 리스크 관리 위에서 결단이 내려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 글은 개인적인 경험과 의견을 공유한 것이며, 전문적인 군사·안보 자문이 아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