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뉴스에서 남중국해 충돌 소식을 접할 때마다 "저건 먼 나라 얘기 아닌가"라고 넘기는 분들이 많을 겁니다. 저도 처음엔 그랬습니다. 그런데 34년간 군에서 복무하며 합동작전을 계획하고 정책부서에서 동북아 안보 환경을 분석하다 보니, 남중국해에서 해경선 하나가 움직이는 것도 우리 수출입 물동량과 에너지 수송에 직결된다는 사실을 피부로 느끼게 됐습니다. 이 글은 그 연결고리를 풀어보려 합니다.
회색지대 전략: 전쟁도 아니고 평화도 아닌 압박
중국이 남중국해에서 구사하는 방식을 보면 군함을 앞세우지 않습니다. 해경선, 민병선, 어선을 대거 투입해 분쟁 해역을 잠식하는 식입니다. 전문 용어로 회색지대 전략(Gray Zone Strategy)이라고 부릅니다. 이란 군사적 충돌의 문턱은 넘지 않으면서 상대방의 대응을 어렵게 만드는 방식으로, 법적으로도 외교적으로도 "공격"으로 규정하기가 매우 까다롭습니다.
필리핀 해군이 공개한 영상에는 중국 해경이 곡괭이를 휘두르고, 흉기로 고무보트에 구멍을 내고, 군사용 레이저를 조사하는 장면이 담겼습니다. 그럼에도 중국 측은 "자국 영해를 침범한 필리핀 선박을 정당하게 통제한 것"이라고 주장합니다. 양측의 주장이 완전히 엇갈리는 만큼 개별 사건의 사실관계를 단정 짓기는 어렵습니다. 다만 제가 교관으로 근무할 때 후배 장교들에게 늘 강조했던 말이 있습니다. 현상보다 배경에 있는 전략적 목적을 먼저 읽어야 한다고요. 이 패턴이 수년째 반복되고 있다는 사실 자체가 이미 하나의 전략입니다.
실제로 중국은 분쟁 해역에 수십 척의 선박을 동시에 정박시켜 사실상 해역을 봉쇄하는 형태를 만들었습니다. 이를 두고 일부에서는 '바다 위의 만리장성'이라고 표현하는데, 저는 이 비유가 꽤 정확하다고 생각합니다. 물리적으로 쌓은 장벽은 아니지만, 상대국이 접근 자체를 포기하도록 심리적·물리적 부담을 지속적으로 가하는 구조입니다. 지휘관 시절에도 분쟁은 정규군끼리의 전면전보다 이런 방식으로 더 자주, 더 교묘하게 이루어진다는 점을 병사들에게 교육했는데, 남중국해가 그 교과서가 되고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군사력만으로는 해결이 안 됩니다. 상설중재재판소(PCA, Permanent Court of Arbitration)는 2016년 필리핀의 제소에 대해 중국의 남중국해 역사적 권리 주장이 국제법상 근거가 없다고 판정했습니다. 중국은 판정 자체를 무효라고 선언하며 무시했지만, 이 판결은 국제사회가 법적 기준을 갖추는 중요한 근거가 됐습니다. 외교력과 법적 대응, 국제 공조가 함께 이루어져야 효과적인 대응이 가능한 이유입니다.(출처: 상설중재재판소(PCA))
해상교통로: 우리가 이 분쟁을 남의 일로 볼 수 없는 이유
군에서는 전쟁은 전선에서만 벌어지지 않는다고 가르칩니다. 해상교통로(SLOC, Sea Lines of Communication) 확보가 국가 생존을 좌우한다는 개념입니다. SLOC란 원자재, 에너지, 식량 등이 오가는 바닷길로, 이것이 막히면 전쟁터에서 이기더라도 나라 전체가 흔들립니다. 제가 합동작전 계획을 수립할 때 해군의 SLOC 개념을 이해하는 데 가장 공을 들인 것도 그 때문입니다.
대한민국의 수출입 물동량 중 상당 부분이 남중국해를 통과합니다. 중동에서 들어오는 원유, 동남아시아와의 교역품, 반도체 공급망의 핵심 부품들이 모두 이 항로를 지납니다. 한국해양수산개발원(KMI)에 따르면 우리나라 수입 에너지의 약 70% 이상이 말라카 해협과 남중국해를 경유합니다.(출처: 한국해양수산개발원(KMI)) 이 항로에서 긴장이 장기화되거나 무력 충돌이 확대된다면, 우리 경제와 산업에도 직접적인 파급이 올 수 있습니다.
그런 맥락에서 한국 외교부가 중국·필리핀 간 무력 충돌에 우려를 표명했을 때 중국이 "당사자도 아닌 국가의 참견"이라며 강력히 반발하고 한중 관계를 거론하며 경고한 것은 저는 다르게 읽었습니다. 우리가 진정한 '당사자'가 아니라면 중국이 그토록 예민하게 반응할 이유가 없습니다. 해상 항로의 자유와 안정에 이해관계가 있는 국가는 당연히 목소리를 낼 수 있습니다. 정부가 특정 국가 편에 서는 것과 국제법 원칙에 따라 우려를 표명하는 것은 전혀 다른 차원의 문제입니다.
제가 정책부서에서 근무하며 동북아 안보 환경을 분석할 때 늘 강조했던 항목을 정리해 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 남중국해 긴장 고조 시 우리 에너지·원자재 수급 차질 가능성 점검
- 대만해협 유사 시 주한미군 전력 재배치 여부와 한반도 안보 공백 여부 분석
- 필리핀·일본·호주 등 인도태평양 파트너와의 안보 협력 네트워크 강화 필요성 검토
- 국제해양법(UNCLOS) 기반의 항행의 자유 원칙 지지 입장 유지
이 네 가지는 당시에도 지금도 유효한 항목들입니다. 남중국해 문제는 단순히 중국과 필리핀의 영토 다툼이 아니라, 우리가 어떤 국제질서 속에서 경제와 안보를 운용할지의 문제와 직결됩니다.
방산수출: 해성 미사일이 남긴 방산과 안보의 메시지
미국과 필리핀이 실시한 역대 최대 규모 연합훈련 '발리카탄(Balikatan) 2024'에서 한국산 함대함 미사일 해성(C-Star)이 실전 훈련에 투입돼 폐 유조선을 격침하는 장면이 공개됐습니다. 발리카탄이란 필리핀어로 '어깨를 나란히'라는 뜻으로, 미군과 필리핀군이 매년 실시하는 연합훈련의 명칭입니다. 여기서 한국제 무기가 실제 목표물을 격침하는 장면이 전 세계에 중계된 셈입니다.
솔직히 이 장면은 저도 예상보다 훨씬 강한 인상을 줬습니다. 방산 수출 시장에서 무기 체계의 신뢰성은 카탈로그나 스펙 시트가 아니라 실전과 유사한 환경에서 검증된 결과로 판명됩니다. 해성 미사일이 공개 훈련에서 성과를 보인 것은 단순한 홍보 이상의 의미가 있습니다. 더불어 필리핀 공군이 운용 중인 한국산 FA-50 경공격기가 미군 전략폭격기를 호위하는 임무를 수행하는 모습도 함께 공개됐습니다. FA-50이 필리핀의 핵심 방어 자산으로 자리 잡았다는 것이 실증된 장면이었습니다.
제가 정책부서에서 방산 관련 업무를 간접적으로 접하면서 느낀 것은, 방산 수출은 무기 하나를 파는 것이 아니라 군사 협력 관계와 국가 신뢰도를 함께 이식하는 과정이라는 점입니다. 초도 납품 이후 정비, 부품 공급, 교육 훈련 지원이 얼마나 안정적으로 이루어지느냐가 재구매와 추가 협력으로 이어집니다. 기술력과 가격 경쟁력만큼이나 후속 군수지원(ILS, Integrated Logistics Support) 체계가 중요한 이유입니다. ILS란 무기 체계의 운용 기간 전체에 걸쳐 정비, 부품, 교육, 기술지원을 통합적으로 관리하는 체계를 말합니다. 이 부분이 받쳐줘야 장기적인 방산 협력 관계가 유지됩니다.
또한 타이완 문제와 관련해 마르코스 필리핀 대통령이 타이완 유사 시 개입이 불가피하다고 발언하면서 남중국해 분쟁과 대만해협 긴장이 연동되는 흐름이 만들어지고 있습니다. 중국 해경선이 타이완이 실효 지배 중인 동사군도(東沙群島) 제한 수역에 반복적으로 진입하는 상황도 같은 맥락입니다. 동사군도란 남중국해 북부에 위치한 군도로, 타이완이 실효 지배하고 있지만 중국이 영유권을 주장하는 해역입니다. 이 지역에서의 긴장이 대만해협 전반의 불안정성과 맞물리면 우리 안보 환경에도 직접적인 변수가 됩니다.
💡 자주 묻는 질문 (남중국해 분쟁 및 해상안보 FAQ)
Q1. 회색지대 전략(Gray Zone Strategy)이란 무엇이며 왜 무서운가요?
A. 군함이 아닌 민병선, 해경선 등을 동원해 전면전(Red Zone)의 문턱을 넘지 않으면서 실효 지배를 넓히는 비대칭 압박 전략입니다. 상대국 입장에서 군사적 공격으로 간주하고 정규군을 동원하기 어렵게 만들어 외교적·법적 대응을 마비시키기 때문에 매우 까다롭습니다.
Q2. 남중국해 봉쇄가 한국 경제와 물가에 어떤 직접적인 영향을 주나요?
A. 한국은 수입 에너지(원유·LNG)의 약 70% 이상을 남중국해와 말라카 해협을 통해 수송합니다. 이 해상교통로(SLOC)가 위협받으면 해상 보험료와 물류비가 폭등하고, 국내 유가 및 원자재 가격 상승으로 이어져 국민 물가에 즉각적인 타격을 줍니다.
Q3. 방산 수출에서 후속 군수지원(ILS)이 왜 무기 성능만큼이나 중요한가요?
A. 무기 체계는 단순한 일회성 판매품이 아니라 20~30년 이상 운용되어야 하는 국가 자산입니다. 후속 부품 공급, 정비 지원, 교육 지원(ILS)이 원활하지 않으면 무기가 고철로 전락하기 때문에, 완벽한 ILS 체계가 갖춰져야 국가 간 신뢰 기반의 추가 방산 협력이 가능해집니다.
결론: 바닷길이 안보면, 안보가 곧 경제다
34년간 군에서 얻은 결론이 있다면, 국가안보는 군사력 하나만으로 지켜지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강한 방위력을 갖추면서도 외교적 원칙을 일관되게 유지하고, 해상교통로 보호와 해양 안보에 전략적 관심을 기울이는 것이 동시에 이루어져야 합니다. 남중국해 상황은 단순한 먼 나라의 영토 다툼이 아니라, 우리가 매일 사용하는 기름값, 물가, 그리고 수출길과 직결된 문제입니다.
뉴스 한 줄 뒤에 숨겨진 회색지대 전략의 맥락을 읽고, 우리 스스로 바닷길을 지키고 경제 체력을 다지는 지혜가 그 어느 때보다 필요한 시점입니다.
⚠️ 본 칼럼에 인용된 남중국해 동향, 발리카탄 훈련 내역, 상설중재재판소(PCA) 판결 및 한국해양수산개발원(KMI) 통계 자료는 공신력 있는 국내외 보도 및 공개 기관 자료에 기초하였습니다. 본 글에 서술된 회색지대 전략 평가, 해상교통로(SLOC) 분석, 방산 수출(ILS) 제언은 34년간 군 지휘관 및 정책 분석관으로 복무한 필자 개인의 전문적 식견을 바탕으로 작성되었으며, 특정 정부 기관이나 군의 공식 입장을 대변하지 않습니다. 본 내용은 전문적인 외교·군사 정책 조언이 아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