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군사시설 주변에서 붙잡힌 중국인이 "전투기 교신 듣는 게 취미"라고 했을 때, 저는 순간 귀를 의심했습니다. 34년 군 복무를 하면서 그 말이 얼마나 허황된 변명인지 누구보다 잘 알기 때문입니다. 군산공항 도청 사건과 미군 기지 군장점 운영을 통한 정보 수집 의혹. 단순한 개인 범죄가 아닐 수 있는 이유를 짚어봐야 합니다.
도청장비가 말해주는 것들: 단순 취미가 아닌 정교한 수집
이번 사건에서 압수된 장비 목록을 보고 제가 처음 든 생각은 "이건 절대 취미용이 아니다"였습니다. 현장에서는 노트북, 지향성 안테나, 그리고 SDR(Software Defined Radio, 소프트웨어 정의 라디오)이 함께 발견됐습니다.
SDR이란 기존에 하드웨어로 처리하던 무선 신호 수신·분석 기능을 소프트웨어로 구현한 장비로, 특정 주파수 대역의 통신을 선택적으로 포착하고 기록할 수 있습니다. 아마추어 무선 동호인들도 사용하는 장비이지만, 중요한 것은 '어디서, 무엇을 향해 썼느냐'입니다.
군산공항은 대한민국 공군과 미 공군이 함께 사용하는 한미 연합 군민 복합 공항입니다. 전투기와 관제탑 사이의 교신은 일부 암호화되지 않은 VHF/UHF 대역을 사용하는데, 구조상 외부 노출 가능성이 존재합니다. 60대 중국인 피의자가 인근 호텔에 장기 체류하며 이 교신을 반복 수집했다면 이는 단순 청취가 아닙니다. 제가 군에서 정보·작전 업무를 다루며 배운 핵심 원리 중 하나는 '반복된 통신 데이터의 패턴화'입니다. 단편적인 교신이라도 데이터가 쌓이면 부대의 출격 빈도, 비행 시간대, 훈련 주기, 지휘 체계까지 정확히 추론할 수 있습니다.
또한 40대 중국인 피의자의 수법은 더 정교합니다. 미군 기지 내에서 군장점을 운영하며 내부 직원을 포섭하는 방식은 휴민트(HUMINT, Human Intelligence)의 전형적인 교과서 수법입니다. 휴민트란 사람을 통해 정보를 수집하는 정보 기법으로, 기술 정보 수집과 달리 상대방의 신뢰를 확보하는 것이 핵심입니다. 한미 연합 군사 훈련 자료와 미군 기지 주요 시설 사진이 여기에 결합되면 수집된 정보의 가치는 차원이 달라집니다.
방첩체계의 구멍은 어디인가
저는 현역 시절 내내 "이상 징후를 발견했을 때 그냥 넘기지 않는 것"을 가장 중요한 경계 원칙으로 삼았습니다. 그런데 솔직히 이번 사건은 예상 밖이었습니다. 세계 최대 규모 미군 기지 중 하나가 국내에 있는 상황에서, 외국인이 기지 내에 상점을 차리고 수년간 자유롭게 활동했다는 사실이 그냥 지나쳐졌다는 점이 충격적이었습니다.
방첩(Counter-Intelligence)이란 적대 세력의 정보 수집 활동을 탐지하고 무력화하는 국가 안보 활동입니다. 과거에는 국가정보원과 방첩사(구 군사안보지원사령부)가 이 기능을 전담해 왔으나, 최근 수사권 조정 및 조직 재편 과정에서 기관 간 공백이 발생했다는 지적이 이어집니다. 경찰이 방첩 수사를 주도할 경우 현장 체포에는 강점이 있지만, 해외 공작망 추적이나 인적 네트워크 파악에는 구조적 한계가 존재할 수 있습니다.
법적 처벌 한계도 명확합니다. 이번 사건에 적용된 혐의는 '일반 이적죄'입니다. 오는 9월부터 시행될 간첩죄 개정안은 처벌 대상을 '적국(북한)'에서 '외국 및 이에 준하는 단체'로 확대했으나, 형벌 불소급 원칙에 따라 이번 사건에는 적용할 수 없습니다. 전문가들이 이번 사건에서 가장 주목하는 것은 수집된 정보가 어디로 갔느냐입니다. 정보 수집 행위 그 자체보다 "누구를 위해, 어디로 전달됐는가"가 간첩죄 성립의 핵심이기 때문입니다. 수사기관이 국제적 연결 고리를 추적하지 못하면 이 사건은 단순 입건으로 끝날 가능성도 있습니다. 국가보안법과 관련한 법적 쟁점에 대해서는 국가법령정보센터에서 현행 법령 원문을 직접 확인할 수 있습니다.
OSINT 시대의 방첩, 무엇이 달라져야 하나
현대 첩보전에서는 공개출처정보(OSINT, Open Source Intelligence)의 비중이 폭발적으로 커졌습니다. OSINT란 인터넷, SNS, 위성 이미지, 상용 드론, 항공기 추적 앱 등 공개된 파편적 정보를 체계적으로 수집·분석해 군사적 판단을 도출하는 기법입니다. 지금은 민간인이 무심코 올린 SNS 사진 한 장으로도 부대 이동 경로와 전력이 노출될 수 있는 시대입니다.
실제로 군사안보지원사령부는 장병들에게 SNS 게시물의 위치 정보 노출, 군장비 촬영, 훈련 일정 공유 등을 금지하는 보안 지침을 운용하고 있습니다(출처: 군사안보지원사령부 공식 사이트) . 하지만 보안 교육이 형식적으로 흐르면 지침은 지침으로만 남습니다. 제 경험상, 보안의식은 반복적인 실질 교육과 실제 사례 공유가 함께 이뤄질 때 비로소 체화됩니다.
이번 사건이 우리 안보에 던지는 핵심 교훈은 다음과 같습니다.
- 정보 결합의 위험성 인식: 단편적인 부대 위치, 교신 패턴, 시설 사진이 하나씩은 무해해 보일지라도, 이 조각들이 결합되면 전체 작전 그림이 완성됩니다.
- 방첩 수사 기관 간 공조 강화: 국정원, 방첩사, 경찰 간 정보 공유 및 수사 역할 분담을 명확히 하여 안보 공백을 메워야 합니다.
- 행동 패턴 기반의 모니터링 정비: 단순 국적 차별이 아닌, 주요 군사시설 주변 장기 체류자 및 이상 행동 패턴에 대한 체계적인 감시 시스템이 필요합니다.
- 실질적인 보안 의식 체화: 장병 및 민간 군무원을 대상으로 형식적인 교육을 넘어선 실질적인 안보 교육이 이뤄져야 합니다.
마치며..
중국 국적이라는 이유만으로 무조건 간첩으로 단정해서는 안 됩니다. 법적으로 범죄가 성립하려면 정보 수집의 목적과 배후 연계성이 구체적 증거로 입증되어야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34년 군 생활 동안 가슴에 새긴 한 문장이 있습니다.
"적에게 필요한 것은 극비문서가 아니라, 수십 개의 작은 정보가 결합된 퍼즐이다."
이번 사건은 우리 안보망이 그 작은 퍼즐 조각들을 제대로 통제하고 있는지 묻고 있습니다. 막연한 경각심을 넘어, 정보를 지키는 시스템과 현장의 이상 징후를 놓치지 않는 예리한 안보 감각이 그 어느 때보다 필요한 시점입니다.
FAQ: 군사 보안 및 방첩 관련 자주 묻는 질문
Q1. 무선 교신 청취(SDR 사용)가 왜 군사적 위협이 되나요?
A. 비암호화된 관제 교신 자체에는 극비 내용이 없더라도, 수신 기록이 지속해서 축적되면 전투기 출격 주기, 훈련 패턴, 비행 스케줄, 지휘관 이동 동선 등 부대의 핵심 운용 정보를 정확히 추론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Q2. 휴민트(HUMINT) 공작이란 무엇이며 왜 위험한가요?
A. 사람과의 친분이나 금전적·사업적 관계를 활용해 정보를 빼내는 기술입니다. 보안 경계심을 허물고 합법적인 사업 활동(예: 기지 내 매장 운영)으로 위장하기 때문에 초기 발견이 매우 어렵습니다.
Q3. 9월 시행되는 간첩죄 개정안이 적용되면 무엇이 바뀌나요?
A. 기존 형법상 간첩죄는 '적국(북한)'을 위한 행위만 처벌할 수 있었으나, 개정 후에는 중국, 러시아 등 '외국 및 이에 준하는 단체'를 위해 군사기밀이나 주요 국익 정보를 유출하는 행위도 간첩죄로 엄벌할 수 있게 됩니다.
⚠️ 안내 및 면책조항 (Disclaimer)
본 글은 언론 보도 및 공개된 군사 정보 자료를 바탕으로 작성되었습니다. 본문에 게재된 군사학적 분석과 방첩 관련 견해는 34년간 포병 지휘관 및 참모로 복무했던 필자의 개인적인 안보관에 기초하며, 특정 국가 정부, 국방부, 또는 수사기관의 공식 입장이 아님을 알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