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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한 군대가 있으면 나라는 지킬 수 있을까? 사우디 사태가 던진 현대전의 경고 (지정학적 봉쇄, 에너지 수출, 회복탄력성)

by 등대가 있는 언덕 2026. 9. 18.

강한 군대가 있으면 나라는 지킬 수 있을까요? 군 생활을 오래 하면서 저는 그 믿음이 조금씩 흔들리는 경험을 했습니다. 사우디아라비아의 현재 상황이 그 이유를 정확히 보여줍니다. 세계 최대 원유 수출국이 전투에서 진 것도 아닌데, 석유를 팔 길이 사실상 모두 막혀버렸습니다.

지정학적 봉쇄: 호르무즈와 홍해가 동시에 닫혔을 때

작전계획을 세울 때 가장 먼저 배우는 것이 있습니다. 주 기동로(MSR, Main Supply Route)가 차단됐을 때의 대안입니다. 주 기동로란 병력과 물자가 이동하는 핵심 통로를 뜻하는데, 군에서는 이 경로가 하나뿐이면 그것 자체를 취약점으로 봅니다.

 

실제로 제가 야전 부대에서 대규모 기동 훈련을 주관할 때도, 주 기동로에 연막탄이 터지며 '차단' 판정이 내리는 순간 현장 지휘소 전체가 극심한 혼란에 빠지는 모습을 수없이 경험하고 목격했습니다. 대안 경로(Alternate MSR)가 사전에 철저히 검증되어 있지 않다면 그 순간 부대의 작전 지속 능력은 사실상 마비됩니다.

 

사우디도 비슷한 준비를 했습니다. 호르무즈 해협이 막힐 경우를 대비해 아라비아 반도를 가로지르는 1,200km 길이의 동서 송유관을 대체 수출로로 구축해 놓았습니다. 군사적으로 보면 꽤 합리적인 대비였습니다. 문제는 적도 그 사실을 알고 있었다는 점입니다.

 

미국과 이스라엘의 대이란 공격 이후 상황은 급변했습니다. 이란은 호르무즈 해협에서 원유 수송을 노골적으로 방해하기 시작했고, 예멘의 후티 반군은 홍해 남부 해상 통제권을 장악하며 바브엘 만데브 해협 인근 요충지들을 하나씩 점령했습니다.

바브엘 만데브 해협이란 홍해와 아덴만을 잇는 폭 30km 남짓의 좁은 길목으로, 유럽과 아시아를 연결하는 전 세계 해상 물동량의 약 10%가 통과하는 핵심 수로를 말합니다.

사우디 동서 파이프라인 및 주변 해협 위치. 출처: 뉴스1

이 두 개의 해상 통로가 동시에 위협받는 상황이 된 것입니다. 글로벌 무역 분석 업체 케이플러(Kpler) 등의 집계를 보면 피해 규모가 얼마나 심각한지 실감됩니다. 홍해 및 바브엘 만데브 해협의 봉쇄로 인해 주요 수송로를 통한 아시아행 원유 우회 물동량은 평시 대비 90% 이상 급감했습니다. 전투기 한 대 잃지 않고도 상대방의 경제를 이 정도로 압박할 수 있다는 사실, 저는 이것이 현대전에서 가장 무서운 부분이라고 생각합니다.

에너지 수출 붕괴: 우회로마저 막혔을 때 남는 것

최근 사우디 메디나 남동쪽 알메사바에 위치한 동서 송유관 핵심 가압장이 드론 공격으로 파손됐습니다. 이라크 내 친이란 민병대의 소행으로 추정됩니다.

  • 가압장이란? 송유관을 통해 원유를 밀어 보내는 압력을 유지하는 핵심 시설을 뜻합니다.
  • 영향: 가압장이 멈추면 긴 파이프라인 전체가 사실상 작동을 멈추게 되며, 향후 3~5주 가동 중단이 예상됩니다.

직접 겪어보니 보급로 하나가 끊기는 것과 우회로까지 동시에 끊기는 것은 차원이 다른 문제입니다. 전자는 불편이지만, 후자는 전투 지속 자체가 불가능해지는 상황입니다. 사우디가 지금 처한 상황이 정확히 그렇습니다. 해상 수출로도, 육상 우회로도 모두 위협받고 있습니다.

 

더 곤란한 것은 군사적 대응도, 외교적 타협도 쉽지 않다는 점입니다. 후티 반군을 직접 타격하면 사우디의 핵심 에너지 인프라가 보복 공격을 받을 위험이 큽니다. 실제로 사우디는 지속적인 방어전으로 인해 요격 미사일 재고가 바닥난 상태라고 알려져 있습니다.

 

수십억 원을 호가하는 요격 미사일과 수백만 원에 불과한 저가 공격용 드론의 싸움, 제가 군 생활 동안 방공 전력 운용을 고민하며 느꼈던 무력감도 바로 이 '비대칭적 비용 구조'였습니다. 비대칭성(Asymmetry)이란 군사력이 크게 다른 두 세력이 싸울 때 약한 쪽이 강한 쪽의 취약점을 집중 공략하는 전략 개념으로, 소모전으로 치달으면 수비자가 먼저 방어 한계에 다다르게 됩니다.

 

현재 사우디가 처한 딜레마를 정리하면 이렇습니다.

  1. 군사 대응 강화: 후티 반군의 보복으로 핵심 에너지 시설이 직접 타격받을 위험이 있으며, 요격 미사일 재고 부족으로 방어 능력 자체가 한계에 달한 상태입니다.
  2. 외교적 타협: 후티 반군의 봉쇄 해제 조건을 수용하면 장기적으로 상대 세력만 키워주는 결과가 됩니다. 배후인 이란도 미국으로부터 확실한 양보를 얻지 못하는 한 협조할 이유가 없습니다.
  3. 동맹 의존: 파키스탄, 튀르키예와 체결한 방위 협정은 무기 도입과 합동 훈련 중심으로, 유사시 자동 군사 개입 조항이 없습니다. 미국 역시 직접 타격 개입에는 신중한 입장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이 세 가지 선택지가 모두 막힌 상황에서 무함마드 빈살만 왕세자가 추진해 온 경제 다각화 구상(비전 2030, 네옴시티) 전체가 흔들리고 있습니다.

회복탄력성: 우리가 사우디 사태에서 배워야 할 것

군 생활을 통해 제가 가장 깊이 배운 것은 강한 군대가 전쟁의 필요조건이지 충분조건은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탄약과 연료가 끊기고, 통신이 두절되고, 보급로가 막히면 최정예 부대도 결국 무너집니다. 이것은 군의 이야기만이 아니며, 국가 단위에서도 똑같이 적용됩니다.

 

사우디의 사례는 한국에도 직접적인 함의가 있습니다. 우리는 에너지와 원자재의 해외 의존도가 높고, 그 대부분을 해상 운송에 의존합니다. 한국에너지경제연구원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에너지 해외 의존도는 90%를 훌쩍 넘으며, 그 대부분을 해상 수송에 의존합니다. 중동에서 분쟁이 격화되면 우리 군이 총 한 발 쏘지 않아도 유가 급등, 물류비 상승, 전력 비용 증가가 연쇄적으로 발생합니다. 군 시절 전방 부대의 유류 집적소가 끊겼을 때를 상상했던 것처럼, 국가 공급망의 마비는 예상보다 훨씬 빠르게 민간 경제 전반을 흔들어 놓습니다.

 

북한 역시 이 변화를 주의 깊게 관찰하고 있을 것입니다. 북한이 드론과 미사일 전력을 집중적으로 강화하는 이유를 단순히 숫자 늘리기로만 보면 안 됩니다. 값싼 드론 한 대로 발전소나 항만을 위협할 수 있다면, 상대방은 그것을 막기 위해 훨씬 비싼 방어체계를 동원해야 합니다. 랜드연구소(RAND Corporation)의 비대칭 전쟁 연구에서도 이 비용 불균형이 현대전의 핵심 변수로 반복해서 지목됩니다.

 

회복탄력성(Resilience)이란 외부 충격을 받았을 때 기능을 유지하거나 빠르게 회복하는 능력을 말합니다. 저는 우리가 앞으로 국가 안보를 논할 때 이 개념을 훨씬 진지하게 다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 발전소 하나가 파괴됐을 때 다른 시설이 즉시 기능을 대신할 수 있는가?
  • 주요 항만이 공격받았을 때 대체 항만을 활용할 수 있는가?
  • 특정 에너지 공급선이 끊겼을 때 국가 경제가 얼마나 버틸 수 있는가?

사우디의 실패는 대안을 준비하지 않아서가 아니라, 대안까지 동시에 공격받았을 때의 시나리오를 충분히 준비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강한 군대는 반드시 필요합니다. 하지만 제가 군 생활에서 수없이 확인한 것은, 전쟁은 가장 강한 부대가 아니라 마지막까지 버티는 쪽이 이긴다는 사실입니다. 사우디의 위기는 결국 "얼마나 많은 무기를 가졌는가"보다 "핵심 인프라가 무너졌을 때 얼마나 대체할 수 있는가"를 묻고 있습니다. 한미동맹을 굳건히 유지하면서도 스스로 버틸 수 있는 회복탄력성을 차근차근 쌓아가는 것, 그것이 사우디 사태가 우리에게 던지는 가장 현실적인 안보 질문입니다.

자주 묻는 질문 (FAQ)

Q1. 사우디아라비아처럼 막강한 군사력을 갖춘 국가가 비정규 무장 세력의 봉쇄에 취약한 이유는 무엇인가요?

 

A1. 첨단 정규군은 고비용 장비와 안정된 공급망에 의존하는 반면, 후티 반군 등은 저가 드론과 미사일을 이용해 상대의 핵심 기반시설(송유관, 가압장, 해협)만을 집중 타격하는 비대칭전 전략을 취하기 때문입니다. 수십억 원의 요격 미사일로 수백만 원의 드론을 막아내야 하는 비용 불균형이 지속되면 결국 방어선이 뚫리게 됩니다.

 

Q2. 호르무즈 해협과 바브엘만데브 해협의 동시 위협이 한국 경제에 미치는 직접적 영향은 무엇인가요?

 

A2. 한국은 에너지 해외 의존도가 90% 이상으로, 원유 수입의 대부분이 이 해상 수송로를 거쳐 들어옵니다. 항로가 봉쇄되면 아프리카 희망봉 우회에 따른 운송 기간 증가(약 2주 이상) 및 운임·보험료 급등으로 유가 폭등, 제조업 생산 원가 상승, 국내 물가 및 전력 요금 인상 등의 연쇄 충격이 발생합니다.

 

Q3. 사우디 사태를 계기로 한국 안보 전략에서 최우선으로 강화해야 할 '회복탄력성(Resilience)'은 무엇인가요?

 

A3. 단순 무기 도입을 넘어 주요 발전소, 항만, 정유 시설 등 국가 핵심기반시설에 대한 대체 우회망을 확보하고, 에너지 수입선 다변화, 전략적 비축유 확대, 그리고 핵심 인프라에 대한 대드론·방호 체계를 재점검하여 외부 충격 시에도 사회 기능이 마비되지 않도록 대비하는 능력을 의미합니다.


※ 본 포스팅은 글로벌 무역 분석 기관(Kpler), 한국에너지경제연구원, 랜드연구소(RAND Corporation)의 공공 자료 및 공개 군사 안보 동향을 바탕으로 작성되었습니다. 본 포스팅은 필자의 군 복무 및 작전 분석 경험을 바탕으로 한 개인적 안보·경제 분석 견해이며, 특정 정부 기관이나 국방부의 공식 입장을 대변하지 않습니다.


참고: 사상 최악의 상황…전방위 포위된 사우디, '잿더미' 위험도 [지금이뉴스] / YT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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